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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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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훈련에 참여하기

 

기도하는데 왜 훈련이 필요한가? 지금까지 구하고 찾고 두들기면서 기도를 잘해왔는데 예수님의 기도훈련인가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 그냥 지금처럼 기도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기도하는 것으로는 2%가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도하는 자세며 기도하는 내용이며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에는 뭔가 부족하다. 2%를 채우기 위하여 기도훈련이 필요하다. 기도는 훈련으로 되어 진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를 배울 때는 반드시 훈련이 요구되고 있다.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는데 훈련되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칫째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 그대로 따라 배웠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을 하시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기도하였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준비를 갖추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통로로서 기도를 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례를 받을 때도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받았고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였다. 기도해서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고 하였다.

제자들은 교회를 세워서 세계의 선교를 시작하기 위해 첫째로 행하는 행동이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기도사역 이었다. 예수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였다. 이때 예수님과 같이 제자들도 성령을 받았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제자들이 성령을 달라고 구하기전에 예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순종하는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 그대로 배운데서 비롯된다. 제자들 역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통로로서 기도생활을 하였다.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그대로 배운 것을 행동에 옮긴 것이었다. 예수님은 어떤 중요한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를 다 갖추었듯이 오순절때 제자들도 하나님의 뜻을 기도를 통하여 받아 들일 준비를 했던 것이다.

 

 

두번째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교제였다.

예수님의 기도는 영적인 요소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의뢰하는 믿음을 바탕을 둔 교제가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늘 경험하는 영적인 요소가 있었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기도, 즉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막 1:11) 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모든 유혹을 이기고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기도의 영적인 요소 였다고 하였다. 그분이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고난의 가장 깊은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힘도 기도의 영적인 요소,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머물러 살았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라고하였다.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고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우리들의 기도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처럼 깊은 영적인 기도를 배워야 한다.

신앙생활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누리며, 그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사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그것이 기도의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우리의 모든 희생과 봉사와 경건의 훈련은 결국 우리의 헛된 교만을 쌓거나 무거운 죄책감을 만들어 줄 뿐이다. 그래서 기도할때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깊은 영적인 교제를 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육신적인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수님의 제자들이 기도에 실패 하였던 이유는 이 육신의 기도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음은 기도를 하기를 원하였다. 그런데 육신이 약하여 기도하지 못하였다. (막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육체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기도할 수 없다.

기도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나 먹는 다고 기도가 되는것이 아니다. 기도는 어느 정도는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

기도는 열심히 하면된다. 그런데 훈련을 해야 한다.

세례요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훈련하였다. 기도를 가르쳤다. 이것을 본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훈련하였다.

 

또 하나 예수님의 기도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기도 내용의 변화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제자들에게 기도를 훈련하여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기도 훈련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까? 그것은 기도의 내용을 훈련시키기를 원하셨다. 구약의 기도와 예수님이 구원을 완성하고 난후의 새시대의 기도는 반드시 차이가 있었다. 구약의 기도와 예수님이 구원을 완성하고 난후 새시대의 기도는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구약의 기도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기도였다. 지금의 회개 기도의 일부였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과 언약적인 관계를 맺고 살았는데 이 언약적인 관계를 지키지 못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돌아오는 그런 기도를 했었다.

언약적인 관계를 깨뜨리고 죄로 인하여 이들이 고통을 당할 때 회개하고 부르짖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기도를 통하여 용서하여 주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기도는 구약적인 기도의 내용과 다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구약의 언약을 새 언약을 이루셨다. 새 언약은 피의 언약을 이루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러기에 에수님은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으나 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새 시대에는 예수님이 우리 기도의 중보자가 되신 것이다. 예수님 제자들은 구약의 기도와 달리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기도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예수님이 구원의 중보자요 기도의 중보자임을 제자들이 인식하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기도했던 구약의 기도의 방법과 예수님이 가르치는 기도의 방법이 달랐다..

예수님은 사역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치셨다. 예수님의 사역자체가 기도였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많은 병자를 고치셨다. 병자를 고치기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면에서는 병자를 고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엿다. 예수님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 병자를 볼때마다 그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셨다. 병자를 고치시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 였다. 병자를 불쌍히여기시고 긍휼히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병자를 고쳐 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기도하였다. 예수님의 기도문을 보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하였다.

구약시대의 기도의 내용과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면서 기도한 기도 내용과는 다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구약에 졌어있었던 그 시대의 선지자들의 기도와 예수님이 가르치는 기도는 달라야 할 필요를 알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기도훈련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기도생활이 쉽게 훈련되어 지지는 않았다. 3년동안 예수님이 산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기도훈련을 시켰만 제자들은 기도가 훈련되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와 훈련에 3년동안은 아주 힘들어 했다.

예수님게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셔서 간절히 피땀 흘리며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리셨다. [마26:39]"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더라"(눅22:14) 이렇게 기도하는 데 제자들은 졸고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께 시험에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했는데도 그들은 졸았던 것이다.

 

또 하나 예수님의 기도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서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였다.

중점적으로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였다. 한적한 곳을 찾은 것은 하나님과 하나되기위하여서 였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과 하나가되는 것을 제자들은 느꼈다.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왜 어렇게 혼자 기도하였을까?

하나님과 하나되시기 위하여서이다. 예수님은 기도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다.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였다. (눅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2절은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에서

원문은 “하나님의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이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기도를 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이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기도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알고 하는 기도이다. 왜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 가셨을까? 하나님과 하나되어 기도하기 위하여서다. 예수님은 기도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셨다.

 

예수님의 기도훈련의 결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기도훈련을 하신후 제자들의 기도는 변했고 이후로는 예수님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 보여지는 제자들의 기도의 모습은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과 같다. 그들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였다. 제자들도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제자들의 기도의 내용이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과 같고, 기도의 방법도 예수님의 기도의 방법과 같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도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기도의 응답되는 결과와 같았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기도는 예수님의 기도를 닮아 있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의 기도와 같아지면서 사도들의 삶은 예수님의 삶처럼 살게 되었다. 누가복음의 제자들의 기도모습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의 기도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기도는 예수님을 닮은 기도로 가득차 있다. 기도의 응답의 역사도 예수님이 하나님께 응답받았던 기도의 응답의 내용과 같다.

사도행전 4:31절에서는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라고 하였다. 기도할 때 성령충만할 수 있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라고 31절에 기록되어 있다.

기도하는 자리가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체포된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서 찬송하며 기도할 때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체포되었을 때, 교회가 간절히 기도하자 잠든 베드로를 천사가 깨우고 쇠사슬이 벗어지고, 감옥문이 절로 열리는 일이 일어났다. 기도하면 사람 마음이 바뀐다.

아마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예수님을 믿은 데오빌라도각하에게 예수님을 본받으려면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으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유상섭교수 에수님의 기도로 돌아가자 참고]

예수님처럼 살고 싶으면 예수님의 기도와 같아야 한다. 그러기에 복음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기도생활부터 배워야 한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예수님과 같은 기도의 내용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예수님과 같은 위대한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예수님의 기도모습 ,예수님의 내용과 기도할 때 예수님의 마음등을 본받으면 된다.

요즘 통계를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에 의존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한다. 기도없이 설교로서만 은혜생활을 말한다. 그러나 설교가 예수님과 같은 생활을 하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주 교회에서, 인터 넷에서, 여러모양으로 설교를 듣게 된다. 그러나 설교를 통해 변화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설교에 말씀의 능력이 없거나, 설교를 잘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설교를 통해 가장 많은 감동을 받고, 은혜를 체험한다. 하지만 이 설교는 은혜받은 것으로 끝나 버린다. 설교에 감동을 받는 것으로만 긑나는것이 전부다. 교회 안에 은혜 받는 사람은 많지만 삶이 변화되는 사람은 매우 소수다.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을 없다. 왜 그럴까 기도 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은혜 받은 것을 삶의 변화로까지 연결시키기는 것은 기도다. 예수님도 변화를 경험하는 것을 기도생활에서 채험하였다. (눅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고 하셨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시는 이유는 변화받기위하여 올라가시는 것이 아니다. 산에 올라가시는 목적은 기도하기위하여서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용모가 변화 되었다. 본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기도하러 올라가서 기도하니까 용모가 변화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없이 우리스스로가 변화 되려고 한다. 기도없이 우리가 노력하여 변화하려고 하는 인본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도 기도하는 가운데 용모가 변화가 되었다. 예수님이 스스로 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기도로서 변화되였다. 기도는 이렇게 위대하다.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으려면 예수님의 기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기도가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삶을 살아가는 데는 예수님의 기도 생활과 기도내용을 본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렇게 기도의 필요성을 알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것인가를 가르치셨다. 기도의 내용까지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이시고(막 1:35), 기도를 가르치시고(마 6:5~15), 기도할 것을 요청하시기도(눅 22:46) 하셨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딤전 4:5). 그래서 예수님은 여러 가지 훈련 가운데 제자들과 기도를 같이하시고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이 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의 자리에서 예수님에게 확신을 주고 위로하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을 때 기도하는데 이는 내사랑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게 됐다.

(눅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이때에 예수님게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엿다.

“이때”는 헬라말로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타우 타이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한번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을 뽑기위하여 한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날 모든날 동안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모든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기도할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기도를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뭘까?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나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주는 축복의 통로인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예수님 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실때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사도 누가는 예수님의 육체가 부활의 형체로 변화되는 것을 예수님의 기도와 연결시켰다.

기도 없이 제자들의 삶이 예수님처럼 변화된다는 것은 힘들다. 변화는 일회성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말씀과 기도를 붇잡고 살아갈 때 가능하다. 기도와 말씀에 평상시에 붇잡힐 때 내속에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 기도와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어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기도훈련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을 체험하게 하는 현장이되게 한다.

 

예수님의 기도체험과 우리들의 기도체험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체험을 하였다. 예수님이 기도할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을 보는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의 나타남을 경험하고 용모가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사도행전에서도 제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다 체험을 가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사울의 회심이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만나 기도할 때 그는 기도하면서 변화를 체험합니다. (행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 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울의 회심하는 이야기를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세 번 회심하는 이야기가 다 기도하는 가운데 회심이 이루어 진 것을 알수있다. 회심의 체험을 기도를 통하여 하였다.

그리고 아나니아도 사울을 찾아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도 기도중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음성을 들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만나러가는 데 기도중에 환상을 보고 갔던 것이다.

 

바울이 두 번쩨 회심하는 장면이 사도행전 22장에 나옵니다.

(행 22: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행 22: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행 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행 22: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행 22: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행 22: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행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사울은 기도중에 회개하고 기도중에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을 받을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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