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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성경공부

제 2 강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2015.01.09 15:42

admin 조회 수:818

제 2 강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성경: 요한복음 11:43-44,12:9-11


 

서론

예수님을 믿으면서 알아야 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1. 우리속에 있는 죽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여태까지 사망가운데 거하였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망에 거하였는지 생명에 거하였는지 모른 다면 이것이 신앙생활을 재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두 번째는 우리속에서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삶이구나 이것을 경험하고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망에 거하는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생명에 거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알아 볼려면 내가 어떤 삶의 패턴을 유지하며 살았합니까?  내가 살아가는 삶의  페턴을 보면 내가 사망에 거하였는지 아니면 생명에 거하였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사망으로 살아가는 사망의 패턴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으로 살았다면 생명의 패턴이 있습니다.

사망의 패턴은 사탄의 패턴입니다. 사망의 왕인 우리를  다스리는 패턴인데 이것을 사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패턴이라고 합니다. .

두번째 패턴은 생명의 패턴인데  하나님의 패턴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며 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패턴입니다.

사망의 패턴인 사망의 왕인 사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패턴은 자신을 하나님이 되어 자신의 육체의 본능과 이세상의 자랑거리를 따라 산 패턴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출세만을 위하여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을 다 경쟁자로 여기고 어떻게 하든지 경쟁자들을 짓밟고서라도 자신에 대한 욕심과 야망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망의 패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망의 패턴을 따르면 반드시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은 나로 인하여 철저히 파괴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비판하고 죽이며 짓밟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이는 패턴 사망의 패턴입니다. 사탄의 패턴은 사망의 패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패턴은 생명의 패턴입니다. 살리는 패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패턴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시기 전에는 사망이 왕 노릇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 사망은 패배하고 마귀는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마귀를 명망시키시고 승천하여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전능한 왕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지금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서 자기의 백성을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리셔서 생명의 패턴을 따르게 함으로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정신을 바짝 차려도 살까 말까한 세상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다스림에 바꾸어 사는 패턴은 믿음이 아니면 불가은한 패턴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패턴을 따르는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 오늘 알고 생명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죽은지 4일 되어 송장이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을 통하여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우리속에서 시작되는 영생에 대하여 알려면 우리가 버려야 할 영생의 개념이 있습니다.

잘못된 영생의 개념은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죽으면 천당간다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천당간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 이 개념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천당가는 이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의 개념은 죽어서 천당가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개념입니다.

영생을 알려면 먼저 사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사망에서 벗어냐야 영생이 무엇인지 압니다.

질문 하나 할까요?

사망은 무엇입니까? 영원히 죽은 것이 사망입니까? 하나님과 교제와 하나님의 임제가운데 떠나는 것이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교제어서 떠나고 하나님의 임제가운데 떠나는 것이 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영생은 무엇입니까? 생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제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17:3)

17:3절에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가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하나님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야다'(yada)입니다. 여기서 아는 것이 영생인데 머리로 아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제 가운데 살아가는 체험을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을 알도록 생명을 주시고 이 생명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임제 가운데 나갈 때 예수님의 풍선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브리어세서 하나님을 아는 야다라른 단어는 아담과 하와에거서 처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남녀가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늘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야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하나님을 '알고' 구원자 그리스도를 '안다'는 말은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진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교제와 하나님의 임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를 감안하여 요한복음 173절을 의역하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생이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죽어서 천당가는 개념하고 다른 것입니다.

 

영생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기 위하여 몇가지의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쩨의 질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잘 알아도 나를 위하여 죽은 십자가라는 사실을 알아도 내가 하나님을 떠나 살면 사망가운데 살아간 존재임을 믿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교제 없이 사는 것이 영생의 삶이 아님을 믿는가?

하나님과 교제와 하나님의 임제 가운데 떠나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내가 영생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영생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영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의 교제와 하나님의 임제 가운데 살아가는 것 없다면 참된 영생과 영원한 생명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영생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또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쩨의 질문입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영원히 삽니까?

우리가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영생의 삶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 하나님과 동행할때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 논쟁을 걸어 왔을 때, 주님께서는 대답하시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22: 31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22:32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22:33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22:3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3:6)"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으며, 야곱의 하나님이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지금 하나님안에서 살아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안에서 살아 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내안에서 살아 있는 이삭의 하나님이요, 내안에서 살아 있는 야곱의 하나님이다"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11:25-26) 영원히 죽기 않고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생명을 죽음과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두게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고 신앙생활을 한사람들입니다. 이세상이 전부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은 죽음을 이기는 영생이요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음이후에도 영원히 살아가는 영생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생 그러면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두게인들에게 부활에 대하여 말할 때 영생은 그리스와 함께 교제하면 살아가 주어서도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우리는 위에서 두가지의 질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과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 다르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생 생명이 우리가 생각하는 영생생명과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목숨이 살아있는 것을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주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주님께서는 하나님에게서 교제와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영원한 사망이라고 하십니다.

 

이 영생과 영원히 사는 것을 이해 할려면 바울 사도의 고백을 자주 암송하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1: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1:21)

 

실로 그는 이 믿음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사귀며 살았으며 사도 바울이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사는 것은 그리도와 더불어 교제하면 임제 가운데 하나님과 사귐의 사는 삼인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내안에서 살았고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살았기에 죽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때어 놓고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게인 들입니다. 그다음을 율법사들입니다. 이들에 예수님의 부활에대하여 반대 질문을 합니다. 5형제가 있는데 한 형의 아내를 대라고 살아습니다. 큰형이 죽고 다음에 둘재형이 둘째 형에 죽고 셋째형이 다음에 넷째 그다음은 다섯째 그러면 부활이 잇다면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이러한 잘문에 답을 하고 난후에 신앙생활으 하는데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답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재는 그아 같이 내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가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서로 뗄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 전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기초를 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간 것입니다. 마음가 목숨과 뜻을 다하여 내 전부를 다하여 사랑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고,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인 영생을 위해 살며, 육체적인 쾌락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와 진짜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죽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말씀을 이해가 됩니까?

또한 영생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영생의 삶을 풍성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떡을 먹어야합니다. 영에게 밥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생이 생명으로 우리 안에 오면 이 생명을 빛을 발합니다. 내 마음에 어두움을 몰아 냅니다. 그런데 이 어둠을 몰아 내는 빛의 생명은 늘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그 말씀이 빛으로 마음에 죄성을 몰아내고 죄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의 삶을 위하여 우리는

생명의 밥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는 가운데 영생에 가운에 들어가야 합니다.

 

 내 안에 영생이있다 없다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생명은 빛으로 표현됩니다. 내안에 생명이 있으면 내안에 빛이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밝아집니다. 내안에서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어둠이 물러가기에 죄의 삶이 옛날에는 즐거웠는데 이제 빛이 마음에 있기에 이제는 죄의 삶을 살기기 싫어집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명이 마음에 빛으로 비추면서 어둠을 물러갑니다. 죄의 생각은 차츰 사라집니다. 그리고 생명의 삯이 납니다. 생명의 삵은 영생의 떡을 먹어야합니다. 밥을 먹어야 합니다. 영생의 양식이 말씀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영생의 양식으로 영생의 삶을 풍성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인 영생을 양식을 먹을 때 마다 말씀을 빛이 되어 어두움을 물리치고 영생의 삯을 키웁니다. 말씀은 어두움을 물리치는 빛의 역할을 합니다. 말씀의 양식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어둠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말씀의 빛은 영생의 생명의 삯을 키우는데 생명의 삯은 사랑의 삵이 자랍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life in Christ)입니다. 교제가 무엇입니까? 교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생명(life with Christ)입니다. 봉사가 무엇입니까? 봉사는 그리스도를 위한 생명(life for Christ)입니다. 열매가 무엇입니까? 열매는 그리스도에 의해 나타나는 생명(life by Christ)입니다. 열매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게 흘러 들어와서 나를 통해서 바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생명이 여러분 속에서 바깥으로 밀고 나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체험하시고 계십니까?   여러분 마음 밭에 심겨진 예수님의 생명이 왜 여러분의 생활로 밀고 나와 싹을 내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생명이 흘러가게 할 수 있을까요?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6-58).

 

예수님의 부활 생명(resurrection-life)이 우리를 통해서 흘러갈 때에 우리는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부활 기쁨(resurrection-joy)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기쁨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고, 우리를 통해서 흘러갈 때에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쁨의 흐름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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