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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성경공부

제 1 강의 믿음으로 살아가기

2015.01.09 15:40

admin 조회 수:811

믿음으로 살아라

롬 1:17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서론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으로 살아야 의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크리스찬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종교는 최소한 3가지 요소를 가집니다. 그것은 첫째 대상이고 둘째 내용 그리고 셋째 믿음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대상)이 계시하신 말씀(내용)을 믿고(반응)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인도 하에 있는 성도는 삶에서 믿음으로 선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믿음

 

성자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죄인들인 백성들과 하나가 되셔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를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오직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에 목숨 걸고 매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세례를 받을 때에 예수님에게 비둘기처럼 날아 앉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부 하나님께서 사랑의 품으로 안으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시면서 덮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능력으로 덮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십니다(17:4-5).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가 서로를 영화롭게 하시면서 영원히 이런 섬김의 기쁨을 누리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에게 사랑과 기쁨과 흠모를 쏟아 부으시면서 서로를 배려하시고 섬기십니다. 서로에게 영광을 무한히 돌리시기 때문에 무한히 행복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의 고집과 뜻대로의 삶을 포기하고 자기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 백성 중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함께 영광을 서로에게 돌리면서 기쁨을 나누웠던 것처럼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매일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에게 돌아가 그분의 자녀로 회복되고 그분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요 17:21)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 2:20).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환상 속에서 장로 요한에게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 3:20)

 

여기서 보듯, '더불어 먹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구하는 모든 다른 것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을 밤낮 금식하신 후라 배가 고플 대로 고프셨습니다(마 4:2). 들짐승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매우 무섭고 위험했습니다. 사탄은 이런 극한상황에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사탄이 시험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3: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마 3:6).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3:9).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고 하셨는데, 사탄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반격을 가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그리스도 맞아? 그렇다면 너의 무한한 능력을 사용해서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어 먹어라. 이 높은 데서 뛰어내려라. 내게 한 번만 절해라. 내가 천한 만물을 네게 다 줄 테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는 시험입니다. 이것은 왕중왕으로 하나님 중심, 백성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자기중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시험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심으로 이기셨습니다.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시는 삶으로 이기셨습니다. 앞으로도 십자가를 지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길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 백성 중심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이 제 공생애 출발은 자기중심의 삶을 부추기는 사탄과 싸워서 이기는 삶입니다.

 

사탄은 '네 마음대로 살아. 그러면 정말 행복해.'라고 유혹하지만,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은 믿음의 삶과 멀어집니다. 이기적인 삶은 행복한 삶이 아니라, 불행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믿음의 삶이 정말 행복한 삶입니다.

자기중심의 삶과 내 마음대로의 삶은 정체된 삶입니다. 자기중심의 삶은 고인 물처럼 썩은 삶입니다. 자기중심의 사람은 항상 자기 이권만 계산합니다. 구원의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서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므로 풀무불 가운데 던져지게 됩니다. 그때 '신들의 아들과 같은' 존재, 즉 성육신 하시기 전의 예수님이 그들을 머리털 하니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장차 올 메시아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2편에 보면 '그의 아들'을 하나님이 낳으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방 모든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존재라고 합니다. 모든 원수들을 철장으로 깨뜨리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입추는 자는 살게 된다고,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속에는 오시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는 근본 하나님이셨는데 우리를 위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모든 어둠의 세력을 깨뜨리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와 주신 것 이것이 복음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요셉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여 주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말은 히브리어 '여호수아'와 같은 뜻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사탄과 운명과 가난과 저주, 죄의 굴레의 모든 것이 깨뜨리셨습니다. 이제 생명과 자유와 풍성한 삶과 기쁨과 만족의 삶의 길이 열어주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우리를 재창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와 부활로 모든 사단과 운명을 깨뜨려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죄와 허물과 과거와 사단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우리의 왕이시오, 선지자가 되시며,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품에 않아 주시며 위로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가 우리 삶의 중심으로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게 하기위하여서 우리에게 왕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서 이 땅에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작업을 완성하신 후에 천국으로 올라가셔서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구원을 왕성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하심으로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예수님의 태도와 행동이 나타나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라안에 내주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게 하십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 속에 예수님의 태도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생명과 능력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삼상 17:47),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아라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생명과 능력을 제공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 4-5절을 보십시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

 

우리가 믿음의 플러그를 주님께 꽂아두고 주님 안에 거하면(Remain), 주님의 생명과 능력과 지혜를 받고(Receive), 재생산(Reproduce)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한한 생명과 자원을 공급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예수님 말씀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필요한 부분들을 말씀을 통하여 잘라내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열매를 맺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면 사랑 안에 거하게 되고 사랑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열매입니다.

 

구약성경 욥기 23장을 보면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 인생의 앞날을 아시는 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에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도 모르는 내 앞길을 아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떨지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몇 년이나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지, 그동안의 내 삶 가운데 무슨 일이 있을 지 다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내 자신 조차도 내 자신의 앞날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욥이 한 말입니다. 욥이 듣고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파란만장한 인생의 경험 속에서 터득하고 깨달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사람, 내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말로 내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내 인생을 잘 아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 인생이 좌우됩니다. 하나님이 하시기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앞길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답은 간단해졌습니다. 내 인생의 앞길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내 인생의 미래, 내 운명을 쥐고 있는 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가서는 아무 소용이 없고 내 인생의 키를 쥐고 있는 하나님에게 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내 인생의 문제를 상의하고 의논해야 합니다. 내 문제를 부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날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를 의논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도와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돈 가진 사람, 실력자도 아니고 남편도 아내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만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여러분의 문제를 의논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성경에 보면 어떤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도 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선한 양심을 버렸고 그 결과 믿음이 파선되었다. 빌레도라는 사람은 이단에 빠졌고(딤후2:17-18), 데마라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여 믿음에서 떠났다(딤후 4:10).

 

우리가 정복해야 영적인 적은 육체와 세상과 악령입니다.

 

'육체'는 우리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고 좌절과 실망에 빠지게 하는 '죄의 근성'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속에 죄의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 밖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고 좌절과 실망에 빠지게 하는 '죄의 환경'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밖에 죄의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악령'은 육체와 세상을 조종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고 좌절과 실망에 빠지게 하는 '죄의 원흉'입니다. 악령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와 세상과 악령을 정복하는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육체와 세상과 악령에 지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요 16:33).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해도 환난 때문에 세상에 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고통을 당해도 고통 때문에 세상에 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으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을 때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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