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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1: 도덕과 종교로부터의 자유(창세기 1-3)
1. 서론

 

영감

 

창조의 이야기가 두 가지입니다.

1] 7일로 구성된 창조의 기사가 먼저 나옵니다. [1:1-2:3]

2] 하늘가 땅의 기원으로 시작하는 또 다른 창조의 기사 [2:4-25]

이 두기사가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인간이 창조되기 전의 일을 어떻게 알수있었는가? 이것의 답은 4세기에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본문의 의미

세부분으로 나눕니다. -

1]본문자체의 의미

2]본문은 사실의 기사가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실존적 방향성

3] 나무지 요소들과 연결지어 해석해야 한다.

1]본문자체의 의미- 첫 번째 문자적의미. 두 번째 영적인 의미

3세기말에 창세기 1-2장을 철학적 질문이나.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읽기 시작했다.그래서 창세기를 형이상학적 질문의 답으로 1-2장은 세상의 기원으로 이해하였다. 창세기 1-2장이 외곡이 되었다.

 

본문의 구성

본문의 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세명의 편집자가 중요한 열활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은 엘로힘으로 2장은 야웨라고 불린다.
어쨌든 계시하는 주체가 하나님이라면, 계시는 표현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표현할 단어나 이미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 저자들은 이미지를 비롯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활용해 우회할 수밖에 없었으며, 더없이 신중하고 의도적인 방식으로 우회했습니다. 그럴 때라도 이러한 방식은 하나님의 계시일지 모를 것의 한 부분을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여전히 간접적인 것이어야 했습니다.

 

2. 첫 번째 창조 기사

처음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계시로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관계가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왜 이스라엘땅이 처음부터 이 본문에 자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 에레츠]- 7세기에 유대인들은 땅[ 에레츠]를 이스라엘의 땅을 의미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은 우주 생성론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과 인간관계가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 1-25절에 엘로힘 하나님을 창조에 촛점이 맞추웠다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야웨 라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단어를 엘로힘과 야웨라는 두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엘로힘 하나님은 주변의 민족들에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객관적인 이름입니다.

야웨는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유대인들은 창세기 1장에서 엘로힘의 하나님을 늘 복수로 사용하였고 열방들은 단수로 사용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단수로 만났으나 하나님이 너무 복잡한 분이라서 하나님 자신의 안에 복수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삼위로 존재하였다는 확증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엘로힘, 엘로힘의 영 엘로힘의 말씀 하나님의 삼위로 존재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2절에 땅은 토후 와보후 2절에서 땅은 꼴을 가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3절에 하나님의 첫 번째의 행위가 나타납니다.

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며 빛이 있었다.

엘로힘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는 말과 행동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행동하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로 표현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말씀은 질서를 가져오고 관계를 형성하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히브리어에서는 말씀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창조하는 동시에 계시 한다는 것이다.

창조와 계시는 같은 말입니다.

계시는 그 사람을 일깨우고 자극하며 다시 만듦으로서 새 사람으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주장하였을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고 인간세계에 개입한다는 것을 하나님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일깨우고 자극하며 다시 만듦으로서 새 사람으로 창조하는 구원의 관계로서의 하나님을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성육신이 시작이 된 것이다. 말씀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독생자의 영광이라고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이르렀습니다.

삼위일체 엘리힘과 엘로힘의 영가 엘로힘의 말씀사이에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엘로힘의 말씀이 신약에서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처음 닷새 P65

유대인들은 사물이 공간을 체운다고 보는 공간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한사건으로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태양이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내가 태양과 어떤 관계이고 인간이 태양을 어떻게 이해 할수 있는가이였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무언가를 창조하시는 일과 관련이 있으며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였다.

창세기 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는 출발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태초에는 첯 째로 우선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역대기에 -왕때에서 태초에는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때 태초에는 왕의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번역을 하였다.

 

5절에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고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말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일출로 시작하여 밤으로 끝납니다.

인생을 생명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시작하여 생명으로 마칩니다.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서 새명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11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절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왔더라.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종류대로- 라메드- --할 목적으로 라는 뜻입니다.

열매는 자신의 종을 창조할 목적으로 씨를 맺습니다. -창조 안에 진화론적 창조론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왔더라.-하나님이 보시기에 이것이 선이다. 라는 뜻입니다.

선은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은 바다도 선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도 선이라고 하였습니다. 땅도 선이라고 하였습니다. 짐승들고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이땅을 개발하거나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관리인입니다. 청지기입니다.

이땅을 다스리는 권세는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으로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22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바다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하나님은 이들에게 말씀으로 복을 주십니다.

복의 의미는 무릎을 꿇다는 뜻입니다. 무릎을 꿇은 자가 복을 준 자인지 복을 받은 자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월하는 자가 복을 주는 자가 무릎을 꿇은 자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그들에게 복을 주어의 의미는 구원을 선포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의미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여섯째의 날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이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여섯째의 날엔 먼저 동물을 창조하시고 나중에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인간이 동물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과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

카톨릭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인간의 자유의지 인간의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개신교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께 부여 받은 성품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거룩, 사랑, 등등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원문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 남자와 여자라는 것입니다. 엘로힘은 복수가 하나님의 자기의 꼴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의 엘로힘안에서 인간을 창조하자는 원문입니다. 엘로힘의 그림자 안에서 인간을 창조하다.

하나님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남자와 여자의관계도 사랑의 관계입니다. 남자와 여자 둘이 하나되는 관계가 사랑의 관계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근본 관계가 사랑의 관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으로 서로를 섬길 때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한분을 분리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모양으로 인간을 만들되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혼자 분리하여 인간자체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를 함께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나라. 이것이 선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자체로 선하지 않는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의지를 가졌기에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계명을 주십니다.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말은 자녀를 많이 낳아라. 이뜻 만아니라. 모든 일을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지적인 영역 도덕적인 영역등 모든 일을 수행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뜻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뜻은 자녀외에도 영적인 열매도 맺고 지적인 열매도 맺고 도덕적인 열매도 맺어라는 뜻입니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말은 하나님의 형상안에서 다스리는 말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을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섬길 때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는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통하여 다스렸습니다. 다스리는 것은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의 세계를 섬길 때 창조의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안에 한 중재자입니다. 인간이 창조의 세계를 다스릴 때 창조세계의 전체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소명입니다.

아담은 이러한 소명으로 동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31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것이 큰 선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왔는데 이것이 큰 선이다.

 

일곱째 날

일곱째의 날은 저녁도 없고 아침도없습니다.

일곱째 날의 핵심은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그리고 이 안식은 창조의 왕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세계에서 한발 더 이상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자가 아닌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하나님 편의 어떤 자유를 암시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이 제일 원인(first cause)’이나 원동자(prime mover)’이고 따라서 비인격체라면, 이 원인은 계속해서 작동하고 따라서 안식하려는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러한 시각은 심각한 신학적 오류를 드러냅니다. 비인격체인 제일 원인이라면 쉬지 않고 무한히 행동해야 하므로 안식하려는 그 어떤 결정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첫 번째 창조 기사의 이 부분은, 하나님이 안식하려는 결정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드러내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일곱째의 날은 온 창조의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의 안식 온전한 사랑에 이르러야 합니다.


3. 두 번째 창조 기사 [2:4]

두 번째 창조 기사의 특징

1]두 번째의 기사에서는 아담이 먼저 창조 되고 아담을 돕는 배필 하와가 창조 됩니다.

2]돕는 배필을 창조하기 전에 아담에게 동물을 보게 합니다. 이름을 짖게 합니다.

3]인간이 먼저 창조되고 뒤이어 에덴동산이 거처로 창조 됩니다.

4]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에서 야훼로 바뀝니다. [YHWH] 이스라엘은 [YHWH]를 읽을때마다. 아도나이로 대처하여 읽었습니다. [YHWH] 뜻은 나는 존재한다. 나는 온다. 나는 시작이다. [YHWH]는 자신을 모든 생명의중심에 있는 분으로 이름을 건내는 분이다.

야훼는 자신이 선택한 한 사람과 접촉하는 하나님이며 자신은 계시를 통하여 알수 있게 하엿다. [YHWH]는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면 알수가 없다. 그러나 엘로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통하여 알수가 있다.

두 번째의 창조의기사에서는 엘로힘을 말하지 않고 야웨만 말합니다.

창조하시고 조직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라는 것을 밝힌것입니다.

4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창조의 대락 톨레토드기원들은 성경에 족보를 사용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4절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후손을 다루는 것입니다.

 

8절에 여호와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

동쪽 케뎀메시야가 오는 곳 메시야가 돌아 갈곳은 케뎀이라하 하였다.

케뎀은 모음을 다르게 붙이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10절에서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되었으니

첫 번째의 강은 빈손강- 저멀리 뻣은 것이라는 뜻이다. 넘처 흐르는 강의 의미이다. 무절재 광포를 넘어서라는 뜻이다.

두 번째의 강 기혼강- 가하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아기가 태아날 때 머리가 보이는 순간을 말한다. 생명의 등장을 말한다.

세 번째의 강 힛데겔 -날카롭고 포악하며 관통한다는 뜻이다.

네 번째의 강 페라트- 풍성하고 생산적이다.

에덴동산에는 두 종류의 나무가 있습니다.

 

동산중안에는 생명의 나무가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있습니다. .-

생명의 나무가 있습니다-이것은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이미 에덴동산에 십자가가 있어습니다. 이 나무의 열매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선악과는 신명기 30:15절에서 생명과 죽음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앞에 생명과 선, 죽음과 악을 두었노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면 선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이 선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이 되고 생명에서 분리되면 사망입니다. 이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없이 선을 구별하는 것이고 한나님이 없이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 악이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말해준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선하거나 악한지를 결정하는 능력을 갖게 하여준 나무입니다.

죽음을 악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되는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 죽음이고 악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이 악이도 죽음이다.

 

17절에 저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죽을 것이다. 미완료시제이다. 너희가 먹는 바로 그날부터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형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며 그분의 자리에 앉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죽을 것을 말하는것이니다.

인간이 게속 살아가려면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자유한 요소가 오고가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생활을 내가지

1]아담의 이름, 2]자유의 문제, 3]섬기의 문제, 4]말씀의 문제 4가지다.

1]아담의 이름, -인류는 아담안에서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은 단수로 한사람으로 인간을 대표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가다 아담안에서 창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거듭남 사람에 대하여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예수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다 태어 났기 때문입니다.

 

2]자유의 문제,-27절에서 아담이 영으로 살아서 생령이 되었습니다.

네피쉬- 호흡의 숨을 말합니다. 호흡 숨은 성령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인한 영생을 바람이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숨과 영의 모호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경장하게 하였습니다. 왜 죽지 않는데 경장하게 하였을까?

에덴동산을 경작할 필요가 없어 적이 없으니 나는 동산을 지필요도 없고 나는 동산을 안지키고 안 경작할것야 이거이 악입니다.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하고 행동하는 것이 생명이고 선입니다.

경작한다는 거은 아바드입니다.

에덴동산을 지키고 경작함으로서 에덴 동산을 하나님앞으로 이끌어서 창조의 세계가 이러한 인간의섬김을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목적이 있이 섬길 때 창조의 세계가하나님께 예배하는 거입니다.

 

남자와 여자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사실은 아담이 다스리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자의 이름은 야사에 이쉬의 어미를 붙인 것이다.

여자는 이쉬인데 이쉬는 주인을 뚯합니다. 아담은 주인의 권한을 여자에게 넘겼다는 것입니다. 아샤는 주인이 될 자라는 뜻입니다.

아샤는 여자라는뜻인데 남자의 방향이라는 뜻입니다. 여가가 남자를 인간됨의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여자가 방향을 정하여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인간은 서로가 자신을 알려서 상대방을 통하여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알다는 단어는 야다인데 삼중적인 의미가 있다.

1] 성적으로 안다.

2] 사람의 가치나 사물의 가치를 경험한다.

3] 참여한다.

남자는 여자의 도움으로 자신을 알고 여자도 남자의 도움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1:28절에 하나님은 좋지 않다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남자는 여자를 알지 않고서는 자신을 알지 못하고 여자도 남자를 알지 못하고서 자신을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쉬와 이샤는 관계를 통하여서만 알 수가 있다.

여자는 남자를 세상을 사랑하게 할뿐만아니라. 인성을 가지도록 도움을 주는 돕는 베필이라는 것이다.


4.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 p126 3:1-6

2:25“ 아담과 그 아내 두사람이 벌거 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벌거 벗었으나 아루밈 아룸의 복수형이다. 복수형이다.

벌거 벗었으나 공격받기 쉽고 약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보호수단이 없이는 공격을 받게 된다.

아담이 범죄하고 기술과 도시 건설을 통하여 자신의 보호수단으로 만들었다.

벰은 하나님과 아담을 하나님에게서 멀게 하는 유혹을 한 것이다.

뱀은 나하쉬-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다. 단어다.

 

유혹

여자가 보니- 먹기에 좋왔더라. 요일 2:16절에 육체의 정욕, 눈의 정욕 영의 정욕


5.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이 낳은 결과 p152

단절의 첫 번째의 결과 자신들이 벌거벗은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벌거벗은 것은 약함의 문제이다. 약함을 알고 보호방법을 밫았다.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고 옷을 짓는 자신만의 능력, 그밖의 보호수단을 의지하려 하였다

하나님과 교제를 단절하고 더 이상 사람과 교제를 기초로 하지 않았다.

이들이 하나님을 아는 방식이 두가지가 있었다.

1] 사랑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앎을 통하여 교제가 유지 되고 확대 됩니다.

2]단절된 상태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은 끔찍하고 전능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단절의 두 번째의 결과 인간이 책임을 지게 된다. 책임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 네가 어디 있으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우리는 어디있는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범죄하기전에는 하나님이 답을 하였다. 그러나 범죄하고 인간이 스스로 답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질문앞에 스스로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지 못함을 인식하여 야 한다.

하나님의 질문에 답을 할수 없는 무능력이 세상에서 악을 발견한 결과를 낳습니다.

 

단절의 세 번째의 결과 상대에 대한 고발이다. 고발이 교제의 단절의 결과이다. 사랑밖에서 상대를 객관적으로 알게 된 결과이다.

 

하나님이 내리신 두 번째의 결정은 뱀을 저주하는 거이다 . 뱀이 흙을 먹고 살아야 한다.

뱀은 흙을 먹지 않는다. 뱀이 흙을 먹고산다는 의미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에 근거하는 것이다. 뱀이 인간의 창조의 재료를 먹는다는 것은 아담의 물질적인 본질을 지배하는 관계임을 암시하는 거이다. 인간을 삼킨다는 의미다.

뱀이 그의 발굼치를 상하게 하는 의미는 히브리 문헌에 누군가를 덧에 빠뜨리거나 덧으로 유인하는 뜻이다.

하나님이 내리신 세 번째의 결정은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남자는 수고의 짐고 노동을 하여야 한다.

여자는 출산의 고통- 여자의 소명은 생며을 유지하는데 있다. 여자의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것은 자녀들과의 관계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아기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전체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이끌린다. 여자가 지시와 지배를 받게 되고 남자가 권력오가 지배를 지향하게 되자 이것이 뒤집힌 것이다.

땅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죽음이다. 인간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달리 생명의 과일을 먹어야 하였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없는 완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음과 관련되어 영생에 대한 약속도 보지 못한 것이다.

화해도 없고 부활도 없으며 완전한 죽음 뿐이다. 흙속에 뱀만있다. 죽음은 확실한 공포의왕이 된다.

 

그밖의 결과

창세기 3장의 결론부분 세가지의 주제

1]여자의 이름과 옷이 나온다.

2]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3] 에덴동산 바깥의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1]여자의 이름과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생명을 물려주는 살아 있는자라는 뜻으로 하와라 한다. 이름을 지어 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어줌으로 지배권을 새운 것이다. 이것은 이제 남자의 살중이 살이요 남자의 뼈중에 뼈가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완전한 관계가 단절된다.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서 남자와 여자에게 줍니다. 옷은 보호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나뭇잎을 역어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하나님은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희생의 의미와 목적으로 용서하고 속량하였습니다. 옷을 입힌느것은 죄를 덮은 의미이다.

 

2]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인간이 더 이상 생명의 나무에 손을 대서는 안됩니다.

인간이 죽음을 면할 길이 막힌 것이다.

 

3] 에덴동산 바깥의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담이 자신이 거하는 곳의 땅을 경작하야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