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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복음의 이해

2018.03.24 11:26

admin 조회 수:80

전국 청소년 집회때 저가  강의 하는 것 강의 안을 올립니다.


전국 청소년 집회강의

 

복음을 어떻게 이해 하고 있는가?

 

서론

본론

1.구약의 복음의 이해

2.신약의 복음의 이해

3.십자가의 복음의 의미

결론

 

본론

1.구약의 복음의 이해

1. 구약의 복음의 이해 이사야 527절을 중심으로

구약의 복음의 이해는 두가지 사건을 전재로 한다.

1]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는 것-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의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재로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믿음이나 신앙고백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거이 아니라 10가지의 기적을 통하여 바로의 사탄의 힘을 꺽는 느훼야단의 권세를 꺽음으로 애굽의 사람들이 이들이 나가게 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을 전대로 복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2]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죄의 결과로 이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나서 바벨론의포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게 하며 이스라엘의 의무

우리가 세가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바베론의 노예였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풀어주어서 우리가 바벨론의 슬픔이 사라지고없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나누워주시는 왕복을입고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 천국의 잔치에 세상에서 참여하여 우리가 천국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3)매일 하나님의 경영하심과 우리를 주관하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열바이 만민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삶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1) 5117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죄의 슬픔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첫 번째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죄의 결과가 올무에 결려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슬픔에 잠겨있다면 벗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징계를 다 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의 521절부터 경고입니다.

바벨론에서 벗어나서 슬픔을 그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왕복을 입고 의에 옷을 입고 하나님의 왕의 잔치에 참여하여 구원의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배풀어 주시는 구원의 잔치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천국을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죄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집 구원의 와의 잔치에 참여하였다면 이제는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3)세 번째의 경고의 촉구는52: 7절부터입니다.

천국을 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들이 평화와 기쁨을 드러내고 나타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천국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매일 경험하고 하나님의 다름을 경험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드러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심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하고 천국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천국의 잔치에 참여를 하게 되면 그 하나님을 드러내고 나타 냄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여야 할 복음을 4가지로 요약을 하여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2: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 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 찌 그리 아름다운가

 

첫째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발입니다.

둘째평화를 공포하는 발입니다.

셋째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발입니다.

넷째구원을 공포하는 발입니다.

다섯째시온을 향하여 네 하 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발입니다.

첫째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발입니

첫째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발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에 해당하는 메맛세르의 원형 빠사르()’입니다. 좋은 소식은 주로 전쟁과 관련 하여 전령이 전쟁에서 싸워서 이겨서승리의 소식을 전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좋은 소식입니다. 전쟁에서 권세를 가진 군사들을 그들의 권세를 꺽고 이재 노예에서 해방되었다는 승전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삼하 18:19.26.31). 이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나는 죄의 노예 세상의 노예인데 예수님이 이 영적인 전쟁에서 나를 대표하여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나를 노예로 주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를 나를 노예로 주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탄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함으로 사탄의 권세의 세력을 잃게 하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쟁의 승리로 세상을 바꾸는 자들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은 일차적으로바벨론 압제하의 이스라옐 자손이 해방되어 곧 시온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의미 하합니다.

 

좋은 소식은 그리스도 탄생과 관련된다.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때 천사는 베들레햄 지 경의 목자들에게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아기예수님으로 베들레함에 와서 사탄에게서 전쟁으로 승리하여 이겨서 자기의 백성들을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둘째평화를 공포하는 발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림으로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평화는 하나님과의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평화는 사람과의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과의 갈등 세상과의 갈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사람과의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을 믿고 나후에는 사람과의 갈등이 사라졌습니다. 간증

 

평화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영육간의 복지( well-being)의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주님이 나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

 

셋째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발입니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바탕으로 죄와 사망에 처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되는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넷째구원을 공포하는 발입니다.

52:7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메맛세르 토브 마쉬미아으 예슈아).

구원을 공포하며라는 표현은 복된 좋은 소식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바벨론의 압제 노예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를 통한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죄에 매여 살았던 백성들이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술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죄에 매여살았는데 이제는 술에서 자유하게 된것입니다. 중도에서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구원을에 해당하는 예슈아가 주님 의 이름 예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1: 21).

 

구원을 이해하는 팁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이해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때에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라고 하였습니다.갈대아 우르가 바벨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베벨론으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 가게 합니가?

죄 때문에 가게 합니다. 죄이결과이기 때문에 스스로 바벨론의 포로가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벨론의 용광로에서 풀무불로 삼아서 집어 넣어서 우상을 재어하는 것입니다. 잡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재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개닳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깨닳았다고 할지라도 바벨론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다섯째시온을 향하여 네 하 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발입니다.

52:7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오메르 레치용 말라크 엘로하이크)

통치하신다에 해당하는 말라크는 왕의 지 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서 잔혹한 바벨론의 군주에 게 다스림을 받아 왔다. 이제 그 압제에서 벗어날 것이며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 성들의 왕이 되어 이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인간 왕은 실수와 잘못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 께서는 그렇지 않으시다. 공의와 자비로서 그 다스리는 백성들을 책임져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 다. 즉 본문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은 바벨론의 압제에서의 해방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공의 롭고 복된 삶을 보장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죄로 말미암에 사망이 왕노릇 하였던 비참한 인생을 해방하사(5:14 ; 8:2)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과 권속이 되게 하심 (2: 19)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탄의 세력인 바벨론에게 내어 주어서 건지시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였으니 너 멋데로 살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에게 살롬과 평화가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시고 이것을 땅끝까지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2 신약의 복음의 이해

 

4복음서에서 제시한 복음이란?

마태복음에서 복음의 이해

복음이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 4회에 걸쳐 나옵니다. 2회는 그 나라의 복음’(4:23;9:35), 1회는 그 나라의 이 복음’(24:14), 1회는 이 복음’(26:13)으로 나옵니다.

복음의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복음을 지칭할 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나라의 복음’(4:23; 9:35) 이 두 구절은 앞뒤 문맥의 위치상 복음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이해하는데 그 나라의 복음’(4:23; 9:35) 이 두 구절은 마태복음 5-9장을 감싸는 inclusio의 역할을 함으로써,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설교가 곧 하늘나라의 복음이고, 마태복음 8-9장의 예수의 기적들은 곧 하늘나라의 복음에 수반되는 필수적인 결과들임을 보여 준 증거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나타난 10가지의 기적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태복음5-7장의 산상 설교 그리고 그와 더불어 마태복음8-9장의 예수님의 기적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복음이란 하늘나라와 철저하게 연관된 개념으로서, 하늘나라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이는 마태복음이 제시하는 복음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데이비스와 엘리슨은 마태복음 5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가운데 산상설교와 10가지의 병고침의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메시야 자신의 행동과 인격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가르침과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는 하나님의 활동(, 통치/나라)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사람들의 특성과 다스림의 형태와 그의 결과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과 9장에서 10가지의 병을 고치는 사건은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통치함으로 이미 임하였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12:28 -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1:12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6:16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21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과 더불어 질병을 치유하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통치한 이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는 결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 그 나라의 복음’(4:23; 9:35)이란 그 나라의 복음을 중심으로 한 이 두 구절의 앞뒤 문맥 위치로 볼 때 복음은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복음4:23 의 말의 문맥 이후에 나타난 마태복음 5-7장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제자들의 특성과 임무 및 태도 등에 관한 것들을 설교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 들인 자들의 특성과 임무와 태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9장의 10가지의 병을 고치는 기적의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이 땅에 이미 임하였다는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말한 후에 다시 그 나라의 복음’(9:35]에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복음에 마4:239:35절 사이 이 두 구절은 앞뒤 문맥의 위치에서 중간에 나오는 마59장까지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복음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423절에서 마태복음 5-9장까지에서 설명될 복음의 내용을 요약하고 함축하고 복음의 선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러므로 마태복음 5-9장까지 이 복음의 내용과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내용과 복음의 설명과 복음으로 고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 하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함축하고 복음의 선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복음이란?

마가는 마가복음 1: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한 절로 시작하여 마가복음의 주제를 잡았습니다. 마가는 복음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였고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외에는 그런 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God reigns)"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인데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왕으로서 다스리는 세계가 복음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마가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왕으로 이 땅에 와서 다스리는 그런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중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자기를 다스리는 왕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들의 불행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왕 중 왕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요 고통입니다.

 

마가복음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 1:14-15) 

 

본문에서 주목하여야 할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내용은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3. 십자가의 복음의 의미

4복음서와 바울서신에서 성찬의 의미

성경은 십자가의 복음을 십자가의 3가지의 범주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내일 다가오는 자기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세가지의 범주로 해석을 했습니다.  

 

1] 마태와 마가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연약의 피라고 강조를 합니다.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인데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라고 강조합니다.

 

대속의 제사로 해석하였습니다.   대속의 제사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가 용서되어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대속적 제사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2]누가는 성찬의 의미를 새 언약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바울도 누가처럼 성찬의 개념은 고전 1016-22절에서 참된 성찬에 대해서 새 언약의 개념으로 말하였습니다.

언약의 제사로 그것은 내일 다가오는 자기의 죽음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는 사건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 노릇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노릇해주심에 의해서 살게 되는 그러한 백성으로 재창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자기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3]요한은 생명의 양식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 피는 생명의 음료요 이 떡은 생명의 떡이다. 생명의 양식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 대속적인 피 자신이 피를 뿌림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가 용서되고 그들이 의인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이 패역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씻어 버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되도록 회복하는 대속의 제사라는 피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언약의 피는 애굽에서 구출한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 광야에 모아놓고 모세가 언약의 제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모세가 처음으로 언약의 피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린 제물의 피를 모임 회중에 뿌리며서 언약의 피라, 언약의 피라고외쳤습니다. 이 모세의 선언은 이 언약의 피로 이 피의 뿌림에 힘을 얻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고 그들을 보호하겠고 인도하고 복을 부어주고 구원하겠고 너희의 하나님의 되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겠다는 이 약속이 언약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는 이 언약은 우리와 계약을 맺을 때 피를 뿌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왕들이 언약을 할때 서로 소를 가지고 와서 소의 목을 침으로서 서로의 소의 피를 뿌림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에는 언약을 지키지 못한 자들의 죽음과 피 뿌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와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고 보호하겠고 인도하고 복을 부어주고 반드시 구원하겠다는 약속이 이 언약을 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피로 언약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선택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고 보호하겠고 인도하고 복을 부어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피로 약속한 것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때도 언약으로 하였습니다. 모세이후에 이스라엘백성은 할례를 받음으로 생식기에 피를 흘림으로 시내산의 언약에 참여하여 열심히 하나님의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고 할례의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두가지의 성찬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와 두번째는 언약의 피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는 대속의 재사입니다. -248-대속의 제사를 통하여 백성의 죄를 덮어 그들을 다시 의롭게 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피는 열심히 하나님의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 마가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9장은 조금 진보적입이다. 좀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떡 다섯개로 5000명을 먹이는 사건으로 성찬을 이야기 합니다. 누가가 말한 성찬은 바울이 말한 성찬의 의미와 같습니다. 누가도 성찬의 의미를 새 언약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였습니다.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바울은 고전 1016-22절에서 참된 성찬에 대해서 새 언약의 개념으로 말하였습니다

누가와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돌아가심을 피로세운 새 언약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누가와 바울은 예레미야 31: 31-34절의 말씀 새 언약의 말씀을 염두해 두는 말씀입니다.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누가는 앞에서 마태와 마가가 말한 언약의 제사를 설명하지 않고 언약의 제사를 통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것을 전제로하고 새언약을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창조할 새 언약을 강조하였습니다.

마태와 마가가 말하는 언약의 제사는 대속의 제사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회복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언약의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백성으로 태어난 백성을 다시 창조의 사역을 하겠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피흘림으로 새로운 백성이 창조되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거듭나는 역사를 이루겠다는 것이 새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서 새로운 백성이 창조되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거듭나 새 언약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새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새롭게 창조되어 새로운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와 바울이 말하는 성찬의 의미입니다.

누가와 바울이 말하는 성찬의 의미는 예수님의 죽음을 새롭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거듭나고 새롭게 창조의 사건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새롭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여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창조하고 거듭나게 하는 새 언약과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검사와 같은 기능을 하기에 죄를 폭로하고 죄를 드러내고 그 죄에 합당한 정죄를 선언하고 결국에는 사망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행하였다고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 것 아닙니다. 이것이 사기입니다. 복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율법을 많이 행하면 행할수록 사망이 마음에 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몰랐을 때는 마음이 편합니다. 그러나 율법대로 행할려고 하다보면 사망이 내 마음에 왕 노릇합니다. 그러기에 율법은 애덴동산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단 한 명도구원한 적이 없습니다. 율법이 사람을 변화 시킨 적이 없습니다. 율법이 사람을 구별시켜 거룩하게 한적도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죄인라는 사실을 드러 습니다. 만약에 애덴동산에서 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중에 율법을 다 지켜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있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이 방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율법의 방법을 쓰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절에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것은 복음으로 율법의 한계성을 깨닫고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는 것을 죽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으로는 나를 살릴 수가 없다. 내 인생에 이 율법을 단절하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살리는 복음입니다.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하고 창조하고 변화시키겠다는 약속을 성취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로하신 약속과 성취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겁니다. 내가 복음으로 율법의 한계성을 깨닫고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여기서 새로 변화되는 새 창조의 언약을 예수님과 맺은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마태 마가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제사를 통하여 우리가 거룩하게 됩니다. 언약의 재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됩니다. 이것이 성찬의 의미인 언약의 피로 된 약속의 성취 된 것 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복음에서 성찬의 의미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성찬의 의미는 십자가의 의미는 율법의 한계성을 깨닫고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변화시킬 새 창조의 언약을 맺을수있게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 즉 성령을 보내어 나를 새롭게 변화하여 창조하겠다는 피로 맺은 언약이 새 언약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새 언약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된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어 나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여서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게 한 사건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고 나를 다스려서 나를 새롭게 창조하여 나의 인생에 하나님이 왕 노릇을 하겠다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사망의 삯을 받고 있는 나에게 와서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나의 인생을 내가 주관하여 내가 하나님의 노릇하였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정죄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세상의 하나님 노릇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 나에게 하나님의 노릇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여 내가 정죄하고 판단하던 것을 하나님이 내 속에서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여 너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가게 하겠다는 것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우리와 맺은 새 언약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흘리심의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자기의 판단으로 사람도 자기의 판단으로 자기가 하나님같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이 자신의 재원으로 자기가 자기에게 왕으로서 하나님의 노릇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왕으로서 하나님 노릇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과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도모하겠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은 것은 아담처럼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어서 나의 하나님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가 새 언약에 참여한다는 것이 갈라디아서 2장의 내용입니다.

아담은 자기가 왕이 되어서 자기가 자기의 하나님 노릇을 하게되면서 처절하게 결핍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혜도 부족합니다. 능력과 사랑이 부족합니다. 이제 여기서 인간은 고난이 시작이 됩니다. 이 고난은 죽음의 증상들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와 언약을 맺고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언약에 도장을 찍으면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어 나에게 하나님 노릇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백성이 됩니다.

나의 하나님이 구원의 뿔이요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그는 예수님입니다. 이 언약이 새 언약입니다. 이것이 누가와 바울의 성찬의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