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 로그인
  • 회원가입
  • 홈
  • 가입인사
  • 새가족안내
  • 교회생활안내
  • 예배안내
  • 김봉길목사저서

logo

설교영상

1]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 비유-

천국은 이 땅에서 왕과 백성이 만나는 곳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가 서로 스며드는 곳입니다.

씨뿌리는 비유의 해석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알레고리적인 해석은 이렇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 인자입니다. 밭은 세상입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자녀들입니다. 원수는 마귀인 것입니다.

이 해석의 결론은 마귀가 뿌린 가리지는 마지막에 불어 던진다는 마지막 심판의 내용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 겨자씨의 비유는 마지막 심판과 무관한 내용입니다. 현재적인 이땅에서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 비유를 어떻게 해석을 하여야 합니까?

씨 뿌리는 비유에서 천국은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사람에 비유입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일하는 왕과 아주 비슷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다스리는 왕과 관련된 힘을 말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세상에 개입하는 두 가지의 행위 세상임금의 개입이고 천국의 주인의 개입입니다.

알곡을 뿌리는 자가 있고 가리지를 뿌리는 자가 있습니다. 알곡을 뿌리는 자는 천국주인의 개입이고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세상임금의 개입입니다.

천국은 현존합니다. 두 가지 측면을 볼 때 천국은 현존합니다. 알곡을 뿌리는 자는 천국주인의 개입과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세상임금의 개입이 현존하는 곳입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 천국주인의 개입한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사람의 종들이 있습니다. 종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종이 잠들었을 때 악이나 천국이 아닌 것이 생겨 났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무엇이 사탄의 영역이고 무엇이 천국의 영역인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하여 태운다는 마지막의 심판의 부분에 대하여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 각자의 속에는 가라지가 있습니다. 알곡도 있습니다. 완전한 알곡과 완전한 가라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이 이세상에서 정확하게 구분이 어렵습니다. 팔레스틴의 알곡과 가라지는 시가 독성을 띤 것외에는 전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뿌리에 영켜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알국의 신자를 만든다는 것과 순전한 온전한 교회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쪽사람들에게 100%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는 사람들 저쪽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게 100%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판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자를 뽑아 이글거리는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을 뽑는 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는 아노미아인데 사람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중성입니다. 사람이 아닌 사물을 가리킵니다.

무엇을 뽑아서 불어 던져야합니까? 사람입니까? 이땅에서 불신자들을 뽑아서 지옥불에 던진다는 내용입니까? 아닙니다.

불어 전진다는 것은 아노미아입니다.

아노미아는 법의 부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법의 부재란?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 가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아노미아입니다. 아노미아는 안개에 같혀서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아노미아는 삶에 아무런 의미도 없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상태을 말하기도 합니다.

천국에서 뽑아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노미아입니다. 아노미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옥은 마귀와 천사들을 위해 준비 된 것이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귀를 위하여 준비된 곳입니다.

고전 3:11-17절 가라지를 태우는 것은 심판이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하는 수 없는 행위에 세워집니다. 우리가 행했던 것이거나. 생각했던 것이거나 가치가 있게 여겨지는 것이거나 살았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과 불을 통과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와 신자를 구분하여 불신자만 불에 던지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불에 연단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남아 있는 것이 있고 남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설영 우리의 삶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다고 하여도 우리의 자신은 구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것도 없는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의 불에서 견뎌 낸다면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금은 불에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금을 취합니다. 의사가 환자의 몸에서 암을 재거하여 환자의 생명을 살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현재적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신자의 삶을 관통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모든 것을 재거하여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불을 통화해 영생에 편입되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전 3:11-17절에 설명입니다. 이것이 심판으로 말하는 성도의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씨앗은 자라고 누룩은 반죽을 부풀게 합니다. 천국은 힘에 비유됩니다.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천국은 주인이 씨를 뿌립니다. 그러나 겨자씨 비유에서는 이미 씨가 뿌려져 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종말론적인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왕과 그의 행위 성령과 담지자들이 하나가 되어 분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들이 나무겨자나무가지에 깃든다는 것은 이교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편입이 된다는 종말론적 과장입니다.

결론적으로 천국은 이 땅에서 왕과 백성이 만나는 곳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행위가 서로 스며드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