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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

2020.11.27 23:20

admin 조회 수:883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

저자: D. 레벤슨


저자는 히브리성서에 대한 탁월한 해석과 랍비 문헌, 고대 근동 문헌 등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고대와 현대,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건전한 대화를 이끌고 있는 유대교 성서학자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웰슬리 대학 및 시카고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하버드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 할 점이 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무에서의 창조로 보지 않고 무질서를 질서고 바로 잡은 하나님의 왕적인 통지로 본다. 이렇게 천지 창조를 본 것은 바벨론의 전쟁사와 바벨론의 제사장의 역사와 관련을 지어서 천지 창조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6일간의 천지창조와 안식일은 혼돈의 질서를 바르게 정돈하시는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로서 안식일은 전쟁의 승리하신 승리자 하나님을 높이고 거기에 관리자로 참여한 인간에게 전쟁에 전리품을 나누워 주듯이 전리품을 나누워 자며 하나님의 안식으로 승리의 초대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므로 천지창조의 7일 기사는 제사장적인 문서로서 성전의 계념을 가지고 있다.

천지는 하나님이 거쳐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 성전인 천상과 하나님의 거처인 천지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이 땅에서도 악의 존재를 제압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몇 가지를 주의하여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 책요약

 

D. 레벤슨이 쓴 하나님의 창조와 악의 잔존은 악이 창궐하는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탐구하는 역작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과 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이 피조물과 싸움을 하는가? 시편 74편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 있다.

 

 

서문 (1994)

창세기 1장 및 구약의 다양한 창조 문헌을 분석한 후에 이스라엘의 창조 신앙이 소위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기독교 전통의 창조 신앙과 구별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무로부터의 창조에서 없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스라엘의 고대인들에게 없음이란? 텅빈 공허와 같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없음은 무질서, 불의 , 사망 속박과 같은 부정적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세계관이다. 고대 미드라쉬는 무로부터 창조에서 유대교와 히브리 성서 사이의 모순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창조의 기사에서 이 저자는 무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무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면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텅빈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득한 무질서를 한 곳에 묶어 놓고 (무질서를 결박하고)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창조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질서 속에 이들과 싸움을 하여 이기는 승리의 쟁취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혼돈 (토후 바보후) 였다.

무는 존재의 결핍이 아니라. 실제 활동하는 힘이 있었다. 이들의 무질서의 힘을 제압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지 창조 안에는 슬프게도 창조의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게 묶여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은 미완성 상태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이 언제 완성을 하는가? 미래에 주님의 도래 때 완성이 된다고 이저자는 본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악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 세계 안에는 여전히 악이 잔존하며 활동한다. 그리고 이 악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창조를 무위할 수 있는 잠재적 도전자다. 그럼에도 창조세계가 태초의 혼돈과 무질서로 회귀하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세계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악을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존제하게 하시고 유지시키신다는 개념은 악한 세력을 응징하는 신적 전사에 대한 고대의 신화적 개념과 상충된다.

노아 홍수에 노아와 맺은 언약에 대한 기사를 보면 노아에게 하나님은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 넣지 않겠다는 약속한 것이다. 이것이 노아의 언약이다.

 

서문 39P

이 저자는 우주론이 고대 근동의 신전 건축과 관련이 있다.

구약의 창조와 성전 건축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는 본문을 상세히 해석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성전이 일종의 소우주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갈파했다. 또한 에누마 엘리쉬같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화들과 달리 이스라엘의 창조 신앙 혹은 성전 건축 신앙에서는 인간이 지대한 역할을 부여받는 것에 주목하여 성전을 짓는 창조 행위에서 언약적 책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인간의 역할을 하나님대신 관리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보는 시각과 하나님을 언약의 주인으로 보는 시각사이에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맹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자의 왕권을 승인하는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이다. 창조자는 자기의 다스림을 받을 시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시민이 인간이다. 아담이다.

 

 

이로써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맺은 인간은 창조와 역사 모두에서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성전 신학과 언약신앙을 서로 연결시켜 수 있을 것이다.

 

본론

창조 기사는 우주의 기원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처럼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무로부터의 창조(ex nihilo)”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창조의 신학은 혼돈의 세력으로부터의 질서!” 그것에 관심있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질서의 취약성

1) 이스라엘 종교의 기본 개념

창조개념의 정수는 주권이라는 낱말로 표현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장엄하게다스리시고 만유는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

카우프만은 주권이라는 개념을 창조의 정수 그 이상을 보았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신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기원이 없고 그의 주권 역사 시작도 없다.

말키 믹케뎀 (옛적부터 나의 왕) 은 하나님(엘로힘)이 왕권을 손에 넣은 태곳적 시간을 가리킬수 있다.

7416-17낮도 주님의 것이요, 밤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달과 해를 제자리에 두셨습니다. 17주님께서 땅의 모든 경계를 정하시고 여름과 겨울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혼돈을 제압한 후에 하나님은 창조 질서를 지속하겠다고 맹세하신다.

 

74:12-17절은 창조 선언이 바다 괴물 리워야단을 물리친 기사 바로 뒤에 이어 나온다는 점이다. 괴물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그 결과 세상의 질서가 확립되었다는 이스라엘의 신화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혼돈의 전쟁신화가 창조와 연결되어 있다. 창조 질서 속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7;11 “땅 속 깊은 곳에서 큰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에서는 홍수 문들이 열려서

윗물과 아렛 물의 분리가 사라지며, 그 분리로 생겨났던 마른 당도 사라진다.

 

2) 하나님의 승리 후에도 살아남은 혼돈

창조의 본질은 혼돈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묶어 두는 것이다.

38: 8-11에서 창세기 1장과 공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이 물을 제자리에 묶어두심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혼돈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한 피조 질서의 유가가 가능하다.

만약에 하나님의 통제가 사라진다면 사악한 혼돈의 세력은 지금이라도 다시 솟구쳐오를 것이다.

창조에서 야웨는 리워야단의 머리를 짓밟고 그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리기 보다는 마치 낚시하듯 잡아서 목숨을 구걸하도록 만들어 영원히 족속된 관계에 둔다., 104:26“주님이 지으신 리워야단도 그 속에서 놉니다.”

세상은 본래 안전한 곳이 아니라 불안전한 곳이다. 오직 하나님의 전권적 개입과 그의 영원한 경계가 대 홍수의 재현을 막고 있을 따름이다.

 

51:7-8, 12-13에서 문제는 야웨가 지금 이순 간에는 세상을 향한 권능을 발위하지 못하고 잇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이들의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사야 24-27장은 혼돈의 세력이 결코 제거되거나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았다고 보는 신화적 구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사야 25:6-8에서 제압된 대적은 리워야단이나 바다 괴불이 아니라 죽음이다. 여기서 죽음은 신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선전 사나에서 완벽한 승리를 기념할 때 마침내 제거 될 것이다.

이사야 25:8에서 죽음에 대한 야웨의 초종 승리와 그것을 자축하며 열방에 베푸는 풍성하고 즐거운 잔치는 기록되어 있다.

부활의 개념은 혼돈과 질서, 불모의 세력을 무찌른 후 왕으로 등극하는 생명의 신의 즉위식에 관한 가나안에 뿌리를 둔 종말론에서 비롯된다.

 

욥기40:19,25절에 미드라쉬는 하나님이 개입하실 대에만 천사 가브리엘이 사냥꾼처럼 이워야단을 몰아 쳐부술 것이다. 또한 다른 미드라쉬는 하나님이 죽인 이워야단의 몸으로 연회를 베풀거나 의인을 보호할 장막을 마드실 것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신이 창조 전쟁 직전 혹은 직후에 자신의 충신을 위해 베풀던 승리의 잔치를 연상시킨다.

은혜와 공로는 둘다 종말론적 연회라는 비전에의 핵심이다.

에누마 엘리쉬에서처럼 식탁교제는 승리한 신의 충성스러운 신하들로 구성된다.

 

사울에게서는 주님의 영이 떠났고 그 대신에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 이후에 사울은 우울증과 살인적 피해망상에 시달리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난자와 여자가 악한 세력의 방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모습을 찾을 때 비로소 온존히 자비로운 창조의 하나님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2 혼돈과 질서의 교차- 1;1-2:3

 

5) 저항 없는 창조: 104

40:25-32의 경우처럼 포획되거나 예속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야웨께서 순전히 자신이 데리고 놀기위한 노리게감으로 만든 것으로 묘사된다. 무시무시한 괴물은 자신의 조성자요 창조자요 소우주인 분 앞에서 늘 재롱을 부리며 결코 그분을 거스리지 않는 노리개로 전락한다.

104편에서 리웨야단은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로 세상을 채우실때마다 드러난 신적 지혜의 황홀함에 시편 저자가 탄복하게 했던 수많은 피조물 중 하나에 불가하다.

 

인간에게는 땅을 정복하고 다른 모든 피조물과 새들을 다스릴 추가적인 임무를 부여하신다.

 

104편과 창세기 1장은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한다.

첫 번째 빛을 창조한다. -빛의 옷을 입은 야웨의 보습

물사이에 빈공간 궁창을 만든다.-1043-4절에서 물의 누각의 들보를 놓으시고 바람날게로 이동하사 구름을 당신의 전차로 사용하신다.

이렇게 창세기 1장과 시104편의 어휘는 상당 부분이 중복된다는 것이다.

104편은 이워야단조차도 선한 목적으로 창조되었고 그의 창조자를 계속하여 기쁘시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자의 뜻을 거역한다. 인간이 창조질서의 밝고 쾌활한 이상을 완전히 꽃피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선한 세계를 향한 거대한 투쟁은 창조 신화의 영역에서 인간사회로 어쪄면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왔다.

 

창세기는 거룩한 안식일 제도를 밑그림으로 삼아 옛창조 신화를 덧칠해 넣은 개연성이 높다.

 

6) 7일 창조

창조신화는 7단구조이다.

7일 구도는 후대에 와서 투사되었다고 주장을 한다. 그근거로 셋째날과 여섯째날에 창조 해우이가 두 번 있었다. 그러므로 창조의 행위는 8번이다. 또한 하늘 창조는 둘 째 날과 셋째 날에 걸쳐 있다.

7단 구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봄의 새해첫날 창조가 시작된날 혹은 창조가 완선이 된날여겨 졌다면 ?최초의 성전이 그날 세워질 것이다.

창조의 종결과 완선성된 날 예배의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이 창조를 모방하고 재연하는 날이 신년초하루가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되낟.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축제가 7일간이다.

초막절축제도 7일간이다.

창세기의 창조 본문이 새해초하루가 있는 달 티슈리월이거나 니산월을 가르킨다.

노아가 그해 처음으로 마른땅을 본 날이 니산월 초하루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모세가 만든 이동식 성전의 건축이 니산월 초하루라는 점이다.

 

7) 우주와 소우주 p157

 

메소포타미아의 옛 전쟁신화도 우주창조와 신전건축을 결합하고 있다.

열왕기상 8장 솔로몬의 성전건축 봉헌식이 일곱째달의 칠일 축제 장막절동안에 거행 되었다.

솔로몬 성전건축에 7년이 소요되었다. 성전건축은 창세기 17일 체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의 이동성전도 니산월 1일과 7일에 성전 정화를 규정하는 에스겔의 달력과 관련이 있다.

모세가 성전을 세운 것은 니산원 1일 봅 신연 축일에 이동식 성전을 세운 것이다.

이 절기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르면서 재의가 하늘에 상달했음을 알고 백성이 기뻐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나님이 즉위하는 도성 예루살렘이 소우주이다. 예루살렘에 재건되기 시작할당시 기록된 것을 보면 새로운 창조 새창조라는 개념이 두두러진다.

이사야 65:17-18 “보아라 내가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이걱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니 않을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소우주로 인식되게 건설하였다.

진설병은 112달을 가르키며 지성소는 하나님이 홀로 영광스럽게 다스리는 하늘을 상징한다. 제단은 세상의 이미지이다.

 

성전과 창조와의 상관관계

첫째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염소털로 싼 천으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날- 물과 물사이가 갈라져라- 이 휘장이 너희를 구별하게 할 것이다.

셋째날-물은 한곳으로 모이고- 놋쇠로 만들어 거기에 물을 담아라

넷째날-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기라.- 순금을 두두려 긍잔대를 만들어라

다섯째날- 물은 생물을 번서하게 하고 새들은 땅위의 창공을 날라라- 성막에서는 그룹들이 날래를 그 위에 펼쳤다.

 

창세기 1:1-2:3에 창조의 기사와 출 25-30장 장막 지침간에 어휘상 연결점도 같다.

창조의 기사와 솔로몬성전건축 창조에 모등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성전을 건축할 때 거룩하신분은 이제 하늘과 땅의 일이 끝났다. 모든 일이 끝났다고 말씀하신다.

 

8)안식과 재창조

제사장계 창조신학은 인식일 준수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일곱째의 날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될 때 야웨께서 그들에게 제공하셨던 인도적 안식을 확대시켜 이제는 그들의 종과 가축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날로서 규정한다.

시편 33편은 창조의 행위도 하나의 해방으로 묘사된다.

89:10 “주님은 소용돌이 치는 바다()을 다스리시며 뛰노는 파도도 진정시키십니다.

야웨는 성나 뛰노는 혼돈의 바다를 압하고 그 혼돈의 손아귀에서 지천한 자들을 구속하신다.

15장 출애굽은 힘없는 자기 백성을 향한 자비로운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이다.

 

창조행위를 중단하시고 안식하실 때 우주창조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창세기 1:1-2:3절 창조기사에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강조한 것은 창조는 힘없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속하는 자비의 전형이라는 광범위한 신학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