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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5장 강해 3

성경: 살전 5:14-15

 

서론

 

교회에서 말하는 종말론적인 신앙이라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이 종말론적인 신앙은 지금이 시간에 자대로 사물과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앞에 설 것을 예상하고 멀리 바라보고 시야를 봐라는 말이다. 무슨일이 발생할 때 멀리보고 이 일을 봐라는 것입니다. 끝을 보는 인생이다. 천국을 보는 인생이다. 내세를 보는 인생이다.

역사 앞에 판단을 받는 신앙입니다.

 

변화될 것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를 볼대 그렇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경솔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눅 22:36

베드로를 대할 때 에수님의 태도를 보세요 베드로는 사탄의 유혹이 있지만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님니다 변화 될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것인가? 사람은 인격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만다 다르게 취급을 해야 합니다. 말세지말을 당하는 성도들이 종말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대하여야 합니까/

 

인격적인 교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바리세인은 질책을 하였습니다. - 독사의 자식들아 , 강하게 질책을 합니다.

상처를 입은 죄인, - 따뜻하게 붇들어 줍니다. 삭게오 세리장입니다 . 이들을 격려 합니다.

변화 시켜 줍니다. 그리고 변화되자 너도 아브라함의 자녀다

창녀의 죄인- 죄없는 자가 먼저 치라는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지 않겠다.

살리는데 있습니다.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고 - 이말은 다른 성경은 게으른자들을 권계하라고 되어 잇습니다.

규모가 없다는 말은 질서를 떠난자들을 말한다. 이 단어는 병사가 사열을 하고 앞으로가는 그 사열의 행열에서 벗어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의 무질서를 말합니다.

청소년들의 문제를 연구하다보면 폭력과 비행을 져지르는 청소년에게는 부모의문제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무질서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매우 귀히 여깁니다. 질서를 깨는 세력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천사라는 것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다 쫓겨난 존재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를 사단은 깨려고 한다.

고린도 전서 14장 40절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고전14:33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삶에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도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방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귀란 말은 희랍어로 diabolos라고 하는데 dia(사이에) bolos(던진다)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사이에 끼어 들어가 깽판을 친다는 뜻입니다. 마귀의 이미지가 뭐냐면 삶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입니다. 도 사람드이 줄 서있는데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끼어 들어가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참소자'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만 본래가 '질서의 파괴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규모 없이 살아가는 것이 마귀를 따르는 것입니다. 또 질서를 깨트릴 때 우리는 마귀를 따르는 마귀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규모없이 삶을 사는 자들을 훈계하는 것입니다. 훈계은 생활을 바로 잡다는 뜻입니다. 흔계를 듣지 않으면 생활을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훈계를 듣지 않는 자는 망합니다. 훈계를 들어야 삼니다.

엘리 제사장은 훈계를 하지 않는 아버지로 유명합니다. 자녀들에게 훈계를 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고 자녀들고 훈계를 듣지 않았습니다. 이렇한 잘못 때문에 그 집에 저주가 임하는 화를 당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 하였음이니라"(삼상3:13). 그것이

말로만 하는 훈계이든지 벌을 가하는 것이든지 아무튼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처 집니다.

사도바울은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31절에서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훈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옛 사람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크리스찬의 훈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약해 질경우 우리는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옛사람의 본성은 죄입니다. 우리가 옛사람으로 돌아서는 경우,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죄에 굴복하기 쉽습니다. 죄의 지배력은 더욱 강하게 우리를 억누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옛사람을 죽이시기 위해 보혈을 흘리셨기 때문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비록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쓰러지기 쉬운 인간이기 때문에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옛사람에 대한 계

속적인 승리를 경험하고 이를 굳게 하기 위해서는 절재를 해야 합니다. 절재는 훈계를 통하여 절재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모든 훈계의 목표이며 우리가 타인에게 주는 모든 훈계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전해지는 훈계가 우리를 위한 것처럼 우리의 훈계도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훈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청결케 하시고 치유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을 아아야 합니다.

 

 

2.소심한 자들을 격려하라

소심한자들은 마음이 작은 것을 뜻한다. 약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님니다.

성경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 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후 11:30)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생애는 완전히 약한 생애를 사셨고, 마침내는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는 비록 권력.금력이 없다

우리 주님의 삶은 약한 자의 삶이셨습니다. 얼마나 약하셨는지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 능력과 권세도 없었습니다. 그는 참 약하신 자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는 '잘했다.' 변명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허물이 없다. 나는 죄가 없다.'고 변명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자기를 해치는 수많은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침 뱉는 사람들, 끊임없이 때리고 채찍질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얼굴을 붉히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축복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약하셨습니까?

"나는 나에 대해서 약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약할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모두 너무 강하고 너무 지혜롭고 너무 부요하게 되었다. 오늘의 수많은 교회가 "나는 부자라"고 자랑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초기의 한국교회는 참으로 약했고 가난했고 힘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겸손히 땅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한 적이 있었다. 초기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인 블레어 박사가 지적한대로 그 당시 한국교회는 절망 가운데서 하늘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선교사님, 한국 사람들처럼 불행하고 불쌍하고 소망이 없는 민족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적으로 약하고 힘이 없고 소망이 없는 한국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부르짖음에 귈르 기울이시고 부흥과 축복의 손길을 펴신 것이었다. 결국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만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고 민족과 나라까지 큰 축복을 받은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교회는 너무 커지고 너무 강해지고 너무 지혜로와졌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너무 위대해져서 거의 우상화됐다. 결국 한국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는 비난과 비판을 당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사회에 공헌한 것이 없어서 비난을 받는 것은 아님니다. 한국교회가 사회 발전과 세계 선교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한국교회는 비판의 소리를 겸허히 수용하며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바울처럼 약해져야 하고 어리석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머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리석어질 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그의 지혜 가운데 머물게 하시기 때문이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위대한 사역자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약함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리석음을 통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체험하자.

 

 

3.연약한자들을 붇들어 주라

성경은 우리 인간을 흙으로 창조했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2장 에는 '질그릇'이라고 말합니다. '토기'입니다. 참으로 연약한 그릇입니다.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만 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누구나 약한 것입니다. 강한 자도 약하고 약한 자도 약한 것입니다. 곰은 6개

월을 먹지 않아도 넉넉히 잘 삽니다. 뱀은 6백일을 먹지 않아도 사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런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산소 공급 없이는 8분밖에 살 수 없고 물을 먹지 않고는 일주일 이상을 살 수 없다는 학자들의 보고가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었을 때는, 심장마비가 왔을 때는 한 5분 내에 회복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잃는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게 태어 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가시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평안한 것 같고 행복해 보여도 가만히 살펴보면 다 가시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가시가 질병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실패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가시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유명한 설교가 Joseph Parker목사는 젊은 목사의 모임에서 그런 말을 하였다. '고통에 관하여 설교를 하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했다. 'There is a broken heart in every pew'(교회의 어느 자리에나 마음이 상한 심령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가시가 있는가? 문제는 우리가 그 가시를 어떻게 받아드리고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고 행복과 불생이 따른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장자가 한 말 가운데 '무용지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용지물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무용지용이라는 말은 못 들어보셨지 않습니까? 무용지용이라는 말은 쓸모가 없는데도 쓸모 있다는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참 그것 때문에 오히려 귀하게 되었다 그런 말이라는 거예요. 이 말은 석 씨라고 하는 목수가 궁궐을 짓는 아주 최고의 목수가 나무를 구하러 전국을 헤매는데 가다가 큰 상수리 하나를 만났습니다. 상수리 하나는 몇 십 아름이 됩니다. 그 아래 소가 천 마리나 쉴 수 있는 큰나무였지만 이 목수가 지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이 선생님 이렇게 좋은 나무를 가져다가 궁궐을 지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도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그 날 저녁이 되어서 잠을 자는데

상수리나무가 이 석씨라고 하는 목수에게 나타나는 거예요. 얘 이놈 네가 나를 무시하고 나무로 취급을 안하고 지나가는가 본데 너는 잘못 생각했다는 거예요. 너는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다른 나무와 나를 비교하지 말라는 거예요. 네가 생각하는 소나무나 향나무같이 멋지게 생긴 쭉 뻗은 나무 같으면 내가 천 년을 살 수 있었겠냐 벌써 도끼에 찍혀서 끝났을 텐데 내가 상수리나무이기 때문에 이렇게 천 년을 살아 온 것이라는 거예요.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좋은 나무가 열매를 맺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것 같으면 벌써 가지가 꺾여졌고 열매 맺지 못할 때 벌써 찍어 넘어졌을 것이고 버림을 받았을 텐데 그 수명이 얼마나 가겠냐? 나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고 이렇게 쭉 뻗은 나무가 아닌 것 때문에 이렇게 천 마리의 소들이 와서 쉬고 있지 않느냐 꼭 궁궐에만 가야 좋으냐? 잘났다는 것 때문에 빨리 죽습니다. 잘났다는 것 때문에 산산조각 납니다. 조금 배웠다는 것이 우리 인간을 겸손하게 내가 부족하다. 질그릇이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일들이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함정에 걸려든 사람은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걸려든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 못난 사람을 위한 함정이 어디 있습니까? 다 이 세상의 함정들은 있는 사람 잘난 사람 능력 있는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약하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이들을 붇들어 주면됩니다.

 

붇들어주라는 말은 같이 손을 잡다는 뜻입니다.

질그릇의 능력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셔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질그릇은 질그릇이 아닙니다. 전능자의 손안에 있는 질그릇은 이 세상의 어떤 힘으로도 깨뜨릴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질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4.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사람이 얼마나 인내하며 사느냐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기도 합니다.

1] 하나님이 다스리는 모든 이치는 참아야 합니다 자연의 이치를 보세요 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야 5:7절)

농부가 땅에서 귀한 열매를 바라기 때문에 길이 참고 늦은 비와 이른비를 기다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참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참을 줄 아는 사람이라야 거둘만한 열매가 있습니다.

 

2]. 아름다운 것은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야 5:10-11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인내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필수과정입니다. 위대한 작품일수록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인내가 복된 것은 모든 것에는 반드시 결말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는 욥의 경우와 같이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반드시 보상의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야 5:8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이 말씀에서 주의 강림은 종말적인 사건을 의미하기 보다는 임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9절에는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상이 멀리 있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보상할 때만 보고 계실 것입니다.

 

 

 

5. 악을 악으로 값지 말라-보응을 거부하라 그리고 선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라멕'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라멕은 아담의 7대손이고 가인의 6대손이다. 이 자는 인류 최초로 축첩을 하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리고나서 자기의 살인 행위는 정당한 조치라며 만약 이 사건에 대해 가타부타 시비를 거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자기의 6대조 할아버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나서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 때 하나님은 가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생명을 해치는 자에겐 일곱 배의 벌을 주겠다는 표를 주었지만, 라멕은 그보다 열한 배나 많은 일흔일곱 배의 벌로 다스리겠다고 하나님을 희화화한다. 성서학자들은 그렇게 호언하는 부분(창4:23∼ 24)을 '라멕의 노래'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하셨다(히10:30). 그리고 오히려 그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했다(롬12:20).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지금도 '라멕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국내 대기업 회장이 사소한 시비 끝에 자기 아들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해서 조직폭력배를 금권으로 동원해 직접 앙갚음한 일이 있었다. 현대판 라멕의 노래다.

 

이 사건은 단적으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야 됨을 보여준다. 사람들 사이 대부분의 문제도 자신이 입은 상처에 대해 직접적으로 앙갚음하려다 덧나서 생긴 것이 많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 부모들은 앙갚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습성을 자녀가 갖도록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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