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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신학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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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1:7-11

 

서 론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문이 난 교회였습니다.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너희로부터 주의 말씀이 울러 퍼졌다. 8절의 말은 주의 말씀의 성격은 말씀으 받으면 울러 퍼지지 않을 수 없다. 산울림처럼 말씀을 받으면 골마다 봉우리 마다. 말씀을 받지 못하면 울러 퍼지지 못하지만 말씀을 받으면 울러 퍼지게 되어있다.

데살로니가로부터 울러 퍼지는 말씀은 단순히 메아리처럼 귓전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울러 퍼지는 말씀이 성도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말씀이 되었다. 말씀이 성도들에게 은혜를 받아서 행동과 함께 울러 퍼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소문은 반드시 믿음을 심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이 우러 퍼졌다고 하닌까 복음을 전하고 전도만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닌가 교인들의 소문은 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믿음을 심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그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각지방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극단주의가 아닙니다.

 

원래 소문의 속성 나뿐 소문이 납니다. 조두순이라는 나쁜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를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매일경재신문-요즘 아동 성폭행으로인한 날리입니다.

조두순 교회에서 성폭행 햇습니다. 그런데 그장소가 교회 화장실입니다. 그런데 대한 매일 신문에서 목사라고 햇습니다. 35분간 인터 넷에 덧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목사라는 것대문에 굉장히 기뻐 했습니다. 공격할 찬스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목사가 아니다 라고 햇습니다. 그러데 실망입니다. 이유는 목사여야 하는 데 이러한 증오심이 있습니다.

왜 한건 잡았는데 이것에 대한 실망입니다 안티 기독교가 너무 실망하더랍니다.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입니다. 목사가 아닌데 목사라는 것을 믿고 싶은 그이야기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잘 안 퍼집니다. 목사가 장기기증을 했다. 기억이 안납니다.

목사님이 장기 기증을했다 죽어가느 영혼을 살였다. 기억 안납니다. 나쁜 것을 소문 낼려고 합니다.

데살로닌가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났다. 좋은 것은 소문이 안 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이 장기를 기증했다. 경쟁에서 축복을 받앗다. 이러한 소문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는 믿음의 삶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삶을 뒤흔든 것이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는 소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소문은 지금까지 볼수가 없는 생명의 장엄함이 있었기 때문에 은혜가 흘러 넘첬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다른사람과 경쟁에서 승리 했다. 이러한 인야기 가 아님니다. 그들의 삶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의 실채가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 삶의 실체가 자기의 생각을 바꾸고 자기의 사람을 바꾸는 말씀이 다스리는 말씀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는 이들의 사람의 이 뿌리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교인들의 삶을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마음에 마음깊은곳에 생명이 들어 가닌까> 생명이 흘러 넘쳣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에, 생각과 인격을 다스리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인들이 어떻게 변했는 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주 사람둘의 지축을 흔든 그러한 교인들의 삶의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본 론

 

데살로니가의 복음의 이갸기는 여태가지의 삶의 존재를 두 흔든 이야기입니다.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복음의 속성을 먼저 알아 보겠습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3가지의 역사입니다.=이것을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복음이 성령과 내마음에서 만나면 3가지의 역사가 일어 난다고 말합니다. [요 16:8]

[1]죄 의 심판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 우리가 거듭나게 되면 , 예수님이 내속에서 들어와 거하시면 e죄가 보입니다 죄가 뭐 입니까? 그들이 믿지 않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거부입니다. 죄는 도둑질하고 , 죄인하고 간음하는 것임니가? 아님니다.

어던사람이 섭섭함니가? 어떤사람이 분노를 느끼던가요? 볼팬을 하나를 훔처 간 사람입니가? 아님니다 . 자기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 사람의 취급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대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이것이 분노입니다 . 저가 가장 화가나는 거은 목사 취급을 한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분노를 살만한 죄 리까요 살인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 간음하는 것, 아님니다ㅣ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취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무시하고 회방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하여 성령을 받으면 이것을 개닳게 한다는 것이니다.

죄질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100의 위인들에게 펀지를 보냈습니다 . 너의 죄에 대하여 들통났다. 그랬는 데 100명이 이사를 했습니다. 도망했다고 합니다.

이말은 누구나 자기의 삶에 도망할 수밖에 없는 죄가 다 잇다는 서입니다.

죄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십자가 은혜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이것이 성령이 깨 닳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2]의를 깨 닳게 합니다.-(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게 간다는 듯이 뭐입니가? 십자를 진다는 것입니다. 싲자가의 보혈로 내죄를 싯어준다는 것을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다는 것이 아님니다. 이의는 대속적인 의입니다. 십자가 진다는 것이니다. 내 의는 그 의가 아님니다. 내의는 십자가가 의입니다 예수님의 보펼의 피가 나의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피로서 내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자랑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3]심판이 있음을 알여 줍니다.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심판- 우리에게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심판이 있습니다. 이심판은 대한민국 법정이 우리를 심판하는 것이 아님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때는 재판관이 심판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판은 인간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니님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판단 하기 이기 때문에 하나님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간 것이 중요 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당신행하는데로 선악간에 하나님이 보는 데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하나님앞에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거루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살아가게 되는 것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2]복음의 변화

이 복음의 능력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어떻게 변화 시켰는지 알아야 합니다.

(살전 1: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변화는 종교적인 형명입니다. 이들의 변화는 두가지 동사를 주목하여야 합니다.

첫쩨는 우상에게서 돌와왔다.

둘쩨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우리는 죄가운에 우상에게서 돌아 선 자들이다.

바울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역의 초반- 고린도 전서15:9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입니다

사역의 중반- 엡3:8 성도 사도가 아민다. 사도의 표현도 아님니다. 서도레요 성도도 작은 성도고 말합니다.

사역의 후반- 딤전 1:15 죄인의 괴수다 라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도 아님니다. 성도도 아민다. 이제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을가?

에수를 믿으면서 타락했습니까? 옛날에는 죄로 안보이던 것이 거룩해 지면 시간이 질수록 죄가 보인는 것입니다 . 그러나 늘 복음이 자기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능력이 뭐냐 이렇게 죄가 있지만 죄 가운데서 우리를 하나님게 돌아 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죄가운데 있지만 자기를 거룩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죄 가운에서 은혜를 배풀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에 거하는 우리를 돌아서게 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해야 합니다.

죄가운데서 벗어나 주님의 보혈로 거룩하는 은혜가 들 있는 것입니다.

 

죄가운에서 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릴려고 하닌가 시간이 걸리고 나의 행위가 들어 가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려고 할 때 자주 우리는 죄잘 하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 깨진 부분을 드리는 것이 중요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면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도덕적 가치에 최고의 것들만 자신으로 받아드리고 이것을 하나님게 들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할려고 합니다.

인간의 본능은 어두운 면은 모두 부모 탓,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를 받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우리의 의가 있기는 있습니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의는 회개하는 마음 뿐입니다 상한마음 뿐입니다. 당신게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마음 뿐입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거룩한 행위인 우리의 의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산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참 모습 즉 부족하고, 깨어지고, 병들고, 위선과 탐욕과 나태함과 거짓된 모습 그대로 나아와 십자가를 붇잡을 때 기뻐하십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잘못 생각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화려한 성전과 살찐 송아지, 형식이 잘 갖추어진 예배의식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의 거룩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에 대해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들을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찐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5:21-22)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일찍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죄를 짓고 죄악의 쓴맛을 알고,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즉 얼마나 어리석고 파렴치한 존재임을 깨닫고서 고백했습니다. 시편51:16,17에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의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실패하고 마음이 상한 상태 그대로 범한 죄의 심각함을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죄짐이 얼마나 누거운지 삶의 문제 십자가의 능력을 통하여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빛없는 세상에서 살아 봤으면 ,, 협박받은 곳에서 감탄받고 해결 된다. 고통받은 곳에서 해방을 받았다.

 

복음에 능력은 예배에 감격을 줍니다 .

우리 자신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희생의 제단에 드려지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작품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점은 기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약한 것, 깨진 것을 싫어합니다. 언제나 화려하고, 포장이 잘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닌 자기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형 수술도 하고, 학벌을 속이기도 하고,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자주 실망과 허무와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도 배어져 나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를 위장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어두운 면, 약점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자기는 의인, 착한 사람, 똑똑한 사람,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죄인들과, 병자들 소외된 자들을 찾으시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위장, 허구, 거짓, 불성실입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가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참 모습을 찾게 되는 순간입니다.

 

복음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부족하고, 죄가 많은지 드러내는 것과 또한 그러한 우리의 참 모습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끌어안으시며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의 참 모습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고 통회하고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을 믿고, 그 품에 나아와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사유하심을 입고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존재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물은 마음이 새롭게 되는데서 시작합니다. 겉모습이 화려하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내적

 

기도원에서 기도햇던 것 같습니다. 입에서 불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은헤와 영광의 감동이 있습니다. 예배가운데 물결치는 은혜가 있습니다. 좌절하고 낙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녹고 회복되는 것을 느꼇다는 것입니다.

우리 에배의 감격이 있습니다. 예배에는 마음에 불을 지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회복의 역사을 알았다면 자살 하겠습니까> 불으 집습니다. 다윗과같은 사라람입니다.

다윗 시글락을 공격하고 돌아 왓는 데 아내도없고 다윗 삼상 30:6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시글락에 도착하였을 때 모든 것이 암담해 보였습니다 (삼상 30:1-6). 아말렉 사람들이 그 도시를 공격하여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너무 낙담하여 지쳐서 탈진할 때까지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였던 다윗은 백성들이 자신을 돌로 치려고 했기 때문에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6절).

"다윗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을" (6절) . 다른 번역들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운 내다' 혹은 '여호와로 인하여 활력을 얻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화와를 힘있고 -주의 부를 수 있는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을 얻고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은혜의 기억 힘의 주시는 통로입니다.

 

복음은 변화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은 이세상의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복음은 어려움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갈렙그 마음 속에 좋으신 하나님을 믿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아 함게 함을 알았습니다 "네 발로 밟는 땅이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는 말씀,그 하나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땅을 주십시오. 가장 어려운 사명을 주십시오. 가장 어려운 것을 하라고 하시면 제가 그것을 해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정신이다.

이스라엘이 모여 가나안의 땅을 제비뽑아 분배를 하려

는 현장입니다. 갈렙은 제비를 뽑아 주어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과거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마음을 두었던 것입니다(민14:24;수14:9). 그러나 지금 갈렙이 자기의 분깃으로 요구하는 남쪽 헤브론 땅은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한아낙 자손이 살며, 그들의 성벽은 철옹성(鐵瓮城)이었습니다. 어느 지파도 이런 곳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직장이 어려운가?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지 말시기바랍니다. 성도님들이 서는곳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가? 이장소는우리가 물러서는 장소가 아님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우리가 정복할 헤브론이다. 이 시대의 헤브론이 바로 여기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움 헤브론이 어디인지 알아내서 그곳을 정복하겠노라고 당당히 나설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능력과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어려운 것은 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명이다. 가장 어려운 것부터 점령해나가는 복음의 능력 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바란다.

 

복음을 받은 결과는 어덯게 되었습니까? 우상에게서 떠났습니다.

 

9절입니다.

(살전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여기서 우상에게는 수식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살아 있지 않습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을 닮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생명이 없이 죽고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있습니다. 살아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이야기 할때 살아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믿느냐? 행위로 말하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건으로서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격자로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눈동자처럼 지키는 하나님이라고 믿고 우리를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성도가 물건을 훔치고 사람들앞에서 거짖을 말하고 이렇게 한다면 머리로서는 믿는 데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시간씩 기도를 한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만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살았는 절실하게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삶의 중심 우리의 생각속에서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물건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중심에 나의 생각을 다스리고 나의 마음을 다스리고 만저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엇다는 것입니다. 이 우리가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여서 움직이고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다스리고 움직이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관여하고 주관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섬김에서부터 있는 것입니다.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여기서 믿음 사랑 소망이 나옵니다. 미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묵상하고 내마음에 기록되기까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인격적인 믿음이 사랑을 낳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사랑이 내 마음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믿음이 사랑의 수고를 낳고 소망의 인내를 낳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준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내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나의 생각을 지배하게 될 때 말씀이 나의 마음을 다스리게 될 때에 사랑을 낳게 됩니다. 사랑의 수고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과 율법의 차이는 뭐냐? 율법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할 수가 없는 데

복음은 믿음으로만 하기만 하면 믿음으로 나가기만 하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좌절을 가져 옵니다. 그러나 믿음은 나가면 성취를 가져 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나가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 데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한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믿음이 그원인으로 사랑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뭐냐 ? 아무리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잇다고 할지라고 내가 정말 여호와를 믿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의지 합니다. 그렇게 믿는 다고 할지라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 믿음은 잘못된믿음입니다. 믿음은 항시 사랑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열매를 맺게 되어 잇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스리고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인격을 주관하고 생각을 바꾸고 나의 맘을 어루 만지시기에 사람과 관계에서 사랑을 낳습니다.

믿음은 사랑의 애너지를 방출합니다.

갈라디아 5:6절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랑을 통하여 애어지를 방출하게 하는 믿음입니다. 기쁨으로 땀을 흘리게 만듭니다. 선교사들의 에너지가 어지서 나온가 믿음인데 이 믿음은 다른사람에게 다 줄수있는 것이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믿음은 사랑을 땀을 흘리게 만듭니다. 사랑의 수고의 단어는 해산의 수고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생명의 탄생으로 해산의 수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소망의 인내를 만듭니다.

재림의 주님을 바라보는것이 소망이고 인내하게 만듭니다.

소망은 우리르 앞에서 잡아 당깁니다. 주님앞에 설것을 생각하라 주님의 신판의 주를 생각하라 우리의 개인적인 끝이 있는데 반드시 끝이 잇다.

이러한 생각을 할때 믿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소망을 생각할때는 사랑의 수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판에 기록되어 역사하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살아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핍박이와도 반드시 승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미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지고 찢어지고 쏴매서 새인격을 만들어 내고 믿음을 만드러 내는 것입니다.

 

 

 

 

살전1:10절 - 예수 은혜를 기억해습니다.

이러한 기억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2차대전에서 원조를 받던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는 단하나의 나라입니다. 그것이 대한 민국입니다. 유일한 나라입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바귑니다. 나라의 백성의 운명이 바귑니다. 주는 것입니다. 원속르 받은 나라는 께속 받게 도비니다.

보조 받은 것 안좋ㅎ습니다.

 

막스 베저가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이것이 우리 나라를 바구었습니다.

죄짐의 해발을 줍니다. 데살로니가의 교회는 이러한 영광이 이습니다.

 

복음은 소망하고리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두산에 박영호 회장으 자살했브니다. 주님안에 일어서는능력으로 경험이 잇는 데 복음을 알았다면 기대하고 기다릴텐데 소망이 있습니다

노무현 데통령도 안타 가우이 이Ttqmsl다.\

복음을 기댜리는 영성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천왕을 위하여 군데 입대하라

 

 

최남선 -독립선언서를 쓰신분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1940년도에

이광수 - 독립선언서를 일본의 가서 낭독을 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에 대한 불이 있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런사람이 천왕을 위하여 군대를 입대하라는 것입니다.

김환란-이대 총장 나를 장송ㅇ곡을 부르지 말고 , 할렐우야를 불러라 라고 말하는 믿음으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30년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다 렸습니다.

1940년데에 일본의 최고의 절정에 이르러 중국을 정복하고 절정에 이릅니다. 일본ㅇ을 넘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라고 판단했던 것이니다. rrmfo서

 

마지막에절망합니다.

 

 

부를수 잇는 이름이 이습니다. 하나님이 함게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기다리는 영성이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유대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였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유대는 캄캄한 밤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내어 소망의 약속을 주십니다.

렘29: 11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하십니다.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돈이 없는 자입니까? 명예를 누리지 못하는 자입니까? 자식이 없는 자입니까? 아닙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하고자 하는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유대 민족의 처한 현실은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래에 너희에게 소망을 줄 터인데 그것이 바로 평안이라 하십니다.

주님이 하늘 가르고 임재하면 승리합니다. 반드시 돌아 옵니다

58세에 [돈키호테]를 출간하여 일약 인기작가가 된 세르반테스는 정규 교육을 조금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추기경의 하인으로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레반트 해전에서 팔 하나를 잃었고 귀국 중에 흑인에게 붙잡혀 알제리에서 5년 간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시인으로서 극작가와 소설가로 57세까지 활동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58세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페스탈로찌는 25세에 이상촌 건설을 하였지만 실패했고, 28세에 빈민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했으나 결국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고아원을 세웠지만 실패했고 이상적인 교육을 꿈꾸며 20년 동안 노력했지만 역시 실패를 반복하며 80년을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후대 사람들은 그를 근세 교육사의 최대 인물로 뽑았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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