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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신학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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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전서 1:1-9

 

서 론

 

바울이 2차 선교여행도중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도우라”라는 환상을 보고 마게되니아 첫성인 빌립보에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군인들이 정착해서 군사의 도시로 로마에 충성을 하는 도시 였습니다.

그런데 전에 빌립보에 바울이 로마의 정신인 로마의 황제가 주인데 예수그리스도가 주라고 고백하고 살았다는 이유로 심한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찬송과 기도로 지진이 일어나 천사의 도움을 받아서 빌립보 감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마게도니아의 수두인 데살로니가로 내려 옵니다.

데살로니가라라는 도시는 마게도인아의 환상을 보고 빌립보를 거처서 3주 동안 바울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행전 17;2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최소한 3주 동안 머물었습니다.

그런데 열매가 있습니다. 행17:4 (행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회당의 지도자 가운데 하나인 야손이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을 믿은 경건한 자들이 회당에 모임을 가지고 잇엇습니다. 여성들이 활발하게 일하는 도시였는데 귀부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 데살로니가를 떠났는 데 열매가 더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3주동안 복음을 전했는데 이러게 믿음의 기적이 일어 났을 가요? 것은 복음을 전햇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 론

 

진짜 복음의 열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다음에 열매가 맺힐때가 있습니다. 복음이 전하여 지는 데살로니가 곳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핍박가운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3주동안 강력하게 열매를 맺었던 이유와 능력은? 이러한 기적을 부르는 결과에는 바로 복음과 복음을 합당하게 들은 성도들의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특징은 뭐냐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 졌던 교회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했기에 교회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전한복음이 진짜 복음이 어야하고 그다음에 복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니까 사람들이 변화 되었고 , 회당장이 믿게 되었고 귀부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을때 복음안에 생명이 있기에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자기들의 취향대로 취사선택하지 않니하고

각색하지 않고 변질이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들이는 데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바울은 감사를 하였습니다.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과 바울의 동역자들이 전하여준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받을때 놀라운 출발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말씀으로만 안됩니다. 라는 생각입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옴직여야 합니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야 일을 합니다 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목사님 몰라서 그렇지요 말씀으로만 가지고는 목회 안됩니다. 이것이 말씀 패배주의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3절(행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설교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복음입니가> 아님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뭐냐?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인격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말로만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전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가 이렇게 역사가 있었던 것은 복음이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능력과 성령와 큰 확신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왜요 이들이 말씀을 받을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지식의 전달이 목적이 아닙니다. 영혼의 변화가 목적입니다.

복음의 목적은 구원을 받아서 의로워 지는 것이 목적입니다. 구원은 말로만 성취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대안이 없습니다. 복음이 우리를 구별되게 합니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데사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였고 믿게 하였고 어려움과 핍박을 견디어 낸 믿음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를 믿음으로 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이렇게 환난과 역경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들의 반란과 폭동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폭도들을 고용하고 시작의 잡패들을 고용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환난을 주었습니다. 이들의 핍박과 앞박과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믿음을 지켜갈 수가 있습니다. 왜요 복음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이 사람의 말로 들렸다면 이러한 어려움과 역경을 견디기 어려웠을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움과 핍박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끝났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 낼수가 업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려면 우리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우리의 습관과 생각 우리의 인격과 삶의 내용을 바꿀려면 말씀을 듣고 알고 있는 정도로 안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소가 되어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나의인격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목사님이 교도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도소선교사역을 중단한 이야기를 들엇습니다. 80%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알고 있는 것으로는 습관을 바꾸지 못합니다. 인격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냥 흘려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들여지는 말씀은 자기의 인격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나의 습관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영혼깊숙히 마음을 찾이하고 마음을 지배하는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완전히 나를 다스리고 지배할 때가지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마음에 주소가 되고 뿌리가 내려야 하고 뿌리가 내릴때까지 기도하고 의지하고 ale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내 마음이 박살이 나서 말씀에 의하여 다시 내인격이 빚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내 생각이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나의 인격을 허물고 내 인격이 다시는 말씀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사고와 인격과 가치관과 생각이 전체가 세롭게 되어 모든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져야 합니다.

8절에 주의 말씀이 퍼저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영혼을 향하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영혼깊숙이 들려 와야 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경외하는 것내 근본의 자세라 라는 말씀이 나의 영혼에 매아리치고 영혼깊은 곳에서 들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강력히 임하였습니다.

우상을 뒤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9절

 

 

교회안도 은혜가 있지만 복음이 아닌 것 종종 있습니다 . 좋은 말과 복음을 혼동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이 있습니다. 인기 있는 사람의 말도 은혜가 있습니다. 교회의 멧세지에 율법주의자가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니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흥회를 가면 이교회에 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능력 어제 자기에게 임하였는 데 이교회에 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죄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50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사람들 회개하라고 합니다. 오늘 마지막날인데 회개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까? 협박입니까?

죄인라고 하면 안걸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사람이 죄인입니다.

누가 모릅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 다가오자 집행관이 그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시오."

 

사형수가 간곡하게 말했다. "임금님에게 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직접 임금님에게 드리게 해주십시오." 이 말을 임금님께 전하니 죽을 사람 소원이니 들어주자고 임금님이 직접 사형수에게 왔다. 그러자 이 사람이 속옷 깊숙한 곳에서 금덩어리 하나를 끄집어내더니 말한다.

 

"임금님, 이것은 아주 귀한 금덩어리입니다. 이 금덩어리를 심으면 나무가 되어서 금 열매가 열립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이 심으면 금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죄인이므로 심어봤자 열매가 맺지 아니할 것입니다. 죄가 없는 임금님께 이 금덩어리를 드리니 정원에 심어 크게 부귀를 누리십시오."

 

금을 받은 임금님은 자기가 심었다가는 금이 안 열리겠다 싶었다. (왜? 자기도 죄가 많으니까!) 그래서 옆에 있는 신하를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금이 많으니까 자네가 심어서 금 열매를 따게." 그 신하 얼굴이 새하얗게 되면서 "아닙니다. 저도 금이 많습니다" 하며 옆의 동료를 보고 말했다. "자네가 갖다 심게." 그 사람도 받아서 다른 동료에게 주었다. "아니야~ 자네가 심게."

 

그렇게 하다가 결국 금이 도로 임금에게 돌아왔다.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에는 자신을 비롯한 여기 있는 모두가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임금은 그를 풀어주면서 말했다. "너는 참 지혜로운 놈이다. 너는 모든 사람이 죄가운데 살고 있다는 지혜를 알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방면하노라." 이 복음을 알지 못한 이 무식한 불신자 죄인중에 괴수인 이 사람도 모든 사람이 죄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복음입니까? 임금을 죄가운데 살고 있다고 깨닳게 하는 이 죄인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복음이 뭐 입니까?

죄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잇습니까?

 

이부흥사는 함걸음 더나가서 더 강하게 복음을 전할려고 합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자기가 지옥에 갔다 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목사가 많다. 장로도 많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외치기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거기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외치기를 재발 회개 하고 이 지옥에 오지마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목사와 장로들이 몸부림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뭐가 빠졌습니다. 경각심을 많이 불어 넣을 수 있는 멧세지는 있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버렸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눌림을 주고 끝납니다. 이것은 협박입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율법입니다. 복음이라고 말하면 뭐가 바졌습니가? 예수님과 십자가의 은혜 가 빠졌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충족시켜야 할 조건은 전혀 없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다.

 

누가죄인이것 모릅니까?- 우리가 허물로 죄로 죽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안걸리는 사람이 어디가 있습니까> 그렇기에 썩었다 이것은 회개하여야 한다. 경각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복음 같지만 협박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뭐냐 우리가 죄인인 것 누가 모릅니가? 다 암니다. 죄가운데 살았던 사람인데 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달리는 시는 외편의 강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망할 사람이지요. 로마서에 죄에 나열하는데 그가우데 기록된 말씀은 다 나에게 말씀하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많은 죄가운에 거합니까? 우리가 죄가운에 거한다고 지적하였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 죄를 알아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 다 암니다. 내가 내죄로 인해 지옥의 백성인 것을 암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죄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현장에 간음한 여인도 죄인이지만 십자가를 붇잡으면 살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죄 가운에 거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죄의 싯음이 필요합니다 .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분이 아님니다. 죄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왔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해결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죄로 인하여 인생을 자포자기 한사람입니다. 죄로인이하여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데예수님을 통하여 그 십자가를 붇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헤를 붇잡습니다 .

그래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의입니까? 아님니다.

남은 것이 십자가의 은혜가 남아야 합니다. 나는 지옥에 갈 사람인데 이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 남은 것이 뭐 입니까?> 자기의 의 입니까> 아닙니다 천국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아님이다. 은혜가 남았습니다. 해결책이 남아야 합니다. 구원이 남아야 합니다.

 

복음이 아닌 것은 뭐냐 ? 나에게 남은 것이 공포요 율법이요 자의 의가 있습니가? 이것은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님니다. 나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한없는 은혜입니다.

복음을 접한 사람이 남은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가슴에 남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이 뭐입니까? 우리의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늘 선함과 착함 행동에 머물러 있으면 구원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는 누구 이겠습니까?

착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의인이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라는 시선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다면 우리는 복음을 아직도 이해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라면 어떤 사람에게 상속을 물려 주게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 자기의 상속을 물려 주겠습니가?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옆집에 공부잘하고 착한사람이 있습니다. 옆집의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아들은 망나니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죽음이 다가 옵니다. 누구에게 상속하겠습니까?. 누구에게 유산을 줄까요? 옆집에 착한 아들입니까? 아니면 자기의 아들 망나니 아들입니다.

상속자는 공부잘하고 아버지 말잘듣는 착한 이웃집의 아들이 아님니다. 자기의 아들 망나니아들에게 자산을 남겨 줄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상속자는 누구 입니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냐 이닌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들이냐 아니냐? 이것이 핵심입니다.

복음은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 복음은 모법생을 강조하는 것이 암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아들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의 초점을 행위 모법생이런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행위 모법생이런것을 강조하는 이것은 복음이 아님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고 난후에 철이드러서 자녀가 언제는 부모에게 효도하여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게 된다는 것입니다.

 

망나니가 다음에 나이들고 철들면 효자가 됩니다 . 데살로니가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부흥사 찰스 피니에게 어떤목사님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거룩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나는 버린 자식인가 봐요 하나님이 나를 버리 셨나 봐요 .

글떼 찰스 피니 목사님은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우리집에 개가 있습니다. 개는 정말 충성합니다. 주인의 말을 너무 잘듣습니다.

우리집에 아들이 하나가 있는데 이는 망나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는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그러나 우리집 망나니는 말을 잘 듣지 안습니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누구에게 상속을 할까요 상속은 개일까요 아들일까요?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

 

 

2. 복음의 내용이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요 소망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이다.

복음은 삶을 풀어가는 핵심입니다. 6절(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기뻐 했던 것은 ?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믿음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지않았습니다.

믿음을 사역으로 믿음을 행했습니다. 믿음은 받드시 사역으로 나타 아야 합니다. 믿음을 역사로 사역으로 했다고 발합니다.

복음의 대상인 사랑을 지식으로 감정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제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랑을 성도를 섬기는 수고로 했습니다.

예수그리도에 대한 소망을 지식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삶의 고난가운데 인내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을 삶을 풀어가는 능력입니다. 말씀은 삶을 해석 능력입니다.

말씀으로 삶을 풀어야 행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저주입니다. 한번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이 사실은 얼마나 저주 입니까?

애굽에서 노애로 사는 데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당합니다. 그러나 유혹을 물리 쳤는데 누명을 씁니다. 얼마나 저주 스럽스니까? 그 누명으로 감옥에 삼니다. 얼마나 저주 입니까> -

그러나 요셉의 생애가 아무리 저주 스럽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저주 스러운 인생을 말슴으로 조명하고 해석하면 축복입니다. 말씀로 자기의 인생의 저주의 틀을 깨면 면 인생이 확 달라 집니다.

말씀으로 인생을 조명하면 행복해 집니다. 요셉이가 형에게 인신매매 안당했다면 애굽의 총리가 되기위하여 애굽에 오겠습니까? 형들에게 인신매매 당하는 것은 애굽의 총리가 되도록 하나님의 인도의 첫단추입니다. 이것이 복음으로 삶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면을 쓰고. 감옥속에 안갔다면 애굽의 바로의 왕을 만난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복음으로 자기의 살을 해석하면 은혜입니다. 말씀으로 인생을 조명 받으면 저주의 삶에서 축복의 삶으로 바뀜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의 도를 받습니다.

 

바울 육채의 가시 저주입니다. 안질로,때론느 간질로 인하여 날마다 저주의 삶을 삽니다. 고난의 삶은 저주입니다. 복음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는 데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질병이 낳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 질병이 하나님께서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이 질병가운데 살아가는 안질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통로입니다. 어느때 저주가 축복의 통로가 됩니까? 말씀으로 자기의 삶을 해석할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삶가운데 받을 때 이것이 축복의통로입니다. 저주의 인생도 말씀의 틀로 해석을 하면 육채의 가시가 저주가 아님니다.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주닌가 육체의사기사 하나님의 은혜를 붇잡은 능력입니다 이것이 말씀입니다. 말씀의 틀을 가지고 자기의 삶을 보면 복이 됩니다. 복음을 알면 저주가 아님니다 .복음은 나의 삶를 해석해지는 것입니다. 저주의 삶도 고난의 삶도 저주가 아닙니다. 복음이 내 마음에 살아서 역사 하고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한 저주가 아닙니다. 축복입니다.

 

복음은 말씀의 힘가지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최악의 환경에서 최선의 환경은 말슴으로 재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 300명의 위인을 조사 해봤더닌 고아더라는 것입니다. 말쓰으로 저주의 역경을 극복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나의 인생의 빛입니다. 여려움이 나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요셉의 고난이 자기의 영광으로 해석힙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어려움으로 이겨내는 것을 원합니다. 이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고난 우리 어렷을대 저항력과 이겨내는 것 말씀이 고난을 이겨 버립니다.

복음은 이렇게 능력을 줍니다. 다윗이 전쟁에 갔다오니 하나닙의 말씀의 능력으로 일엇섭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가습에 있어야 gqk니다. 아무것ㅇ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자살하겟다응 것ㅇ비니다.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이러서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복음이 있으면 세속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닌 것입입니다.

 

결 론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합니다. 복음은 저주의 삶가운데서 벗어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힙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재해석하여 삶을 의미잇게 살게 합니다.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믿음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지않았습니다.

믿음을 사역으로 믿음을 행했습니다. 믿음은 받드시 사역으로 나타 아야 합니다. 믿음을 역사로 ,사역으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복음인 사랑을 지식으로 감정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랑을 성도를 섬기는 수고로 했습니다.

예수그리도에 대한 소망을 지식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삶의 고난가운데 인내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는 그리스의 전지역이 되겠습니다. 마게도니아는 북쪽의그리스이고 아가야는 남부 그리스라고 합니다. 그리스의 전지역의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칭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니다.

모법이 되는 교회입니다. 어떤면에서 모법이 되었습니까?

 

말씀없이 채험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받지 않고 말씀에 서지 않고 에수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될수 없습니다. 말씀없이 사색을 통하여서 그리스도를 본받은자가 될수 없습니다.

환난과 고난가운에 하나님으리 말씀을 받앗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을 받앗는데 환난이 동반되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것이 환난을 초래 하였다는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말씀을 듣자 환난이 들어 닥쳤지만 마음에서는 기쁨이 샘솟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환난을 이기고 남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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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 전서 1장 강해 1 admin 2014.04.30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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