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강해 8

2017.12.29 04:23

admin 조회 수:11

마가복음 1장 강해 8

성경: 마가복음 1: 35-45

 

서론

예수님의 안식일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록한 내용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21-34절까지가 예수님의 하루의 온종일의 일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보냈는지 앞 전주에 설명을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21-34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좇아 내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기까지가 열병이 걸려죽은 베드로의 장모를 살려주시는 일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안식일의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토요일 밤에 시작이 됩니다. 해가 넘어가면 안식일의 시작으로 다음날 해질때까지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안식일을 온전하게 보내고 예수님을 찾아 왓서 병을 고쳐 달라고 합니다. 안식일을 온전하게 보낸 것을 기뻐하시고 이들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는 전번 주에 하나님의 안식의 초대가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장중요하게 예수님의 안식일의 후의 사역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에나 안식일후에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1]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교훈과 치유 사역으로 몸이 퍽 고단하셨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안식후 첫날부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하여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위하여 기도생활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성도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위하여 어떤 일을 하십니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아는 것만큼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알면 깊이 사랑하고 성령을 넓게 알면 하나님을 넓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밀함을 유지하기위하여 성경을 깊이 하는 것이니다. 그다음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집에 머무시다가 '아직 날이 채 새기도 전에'(4:42)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흠정역에서는 '날이 밝기 이전'(agreat while before day)이라 하였고, NIV역에서는 '아직 어두울 때'(while it was still dark)로 번역하고 있다. 이때는 아마도 오늘날의 새벽 3-4시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세벽에 아직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저녁 늦께 까지 사역을 하고 피곤할텐데 그런데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나가셨셔 조용한 곳으로 갔을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을 지나 그성읍에서도 나가셔서 갈릴리 가버나움 교외의 광야 지대로 추정되는 '한적한 곳'으로발길을 옮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리 전역에 사명을 감당하기위하여 떠나기 전으로서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어떤 준비보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를 통한 영적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 한적한 곳에,이른 시간에 홀로 나아오셨던 것이다.

피곤하여 기도 못합니다.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시더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토'(*)는 미완료 시제입니다. 예수께서 기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주일부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위하여 지속적이고도 열심히 기도하셨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맡은 인류 구속 사역, 그중에서도 갈릴리 사역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힘과 능력으로 하기를 운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사역을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지금의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이끌려 일하는 것이니다. 억지함이나 사명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에 이끌려서 갈릴리의 사역을 하기를 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려 세벽에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을 시간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역가운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였습니다.

는 세례받으실 때(3:21)에 기도하면서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인하여 기뻐한다. 기도하고 열 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6:12)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다자들을 선택을 합니다. , 오병 이어의 이적을 베푸실 때와 오병이어의 기적의 그 일 후에(6:41,46)기도합니다.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시고자 할 때에(9:18)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기도중에 제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변화산에 계실 때에(9:28) 기도하면서 옷이 천사보다 히고 솜털보다 히고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도 오라"고 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백성들을 초청 직전에(11:25-30)기도합니다.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부인하기 전 그를 위하여서(22:32) 베드로의 신앙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시던 날 밤에(17), 마지막 성찬을 나누기 전날밤에 저녁내내 기도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14:32, 35,36, 39), 십자가 위에서(23:34), 그리고 그의 부활 후(24:30)에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의 삶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찾아 왔습니다.

1:36 뒤를 따라가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디옥산'(* )은 단순히 추종(追從)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깁게 찾았다는 것입니다. 간절한 예수님을 찾아야 한느 열망을 가지고 샅샅이 뒤지고 성가실 정도로 찾고 또 찾는 것을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역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이들에게 사역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이전에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의 냄세가 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앞에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과 행복이 있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루일과 중에 가장 중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없이 하루일과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용납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식에는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사명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나를 찾아주고 나의 사역을 알아주고 아침부터 베드로의 장모님의 집에 찾아 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아침부터 기도하는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을 만나지 않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온전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구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에는 가벼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나옵니다. 예수님 가벼나움을 떠나가면 안됩니다. 우리와 함께 있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하고 정확한 사명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그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37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있었던 무리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친 것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며 그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를 찾아 뵙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들은 아직 예수를 구주로 깨닫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탄에게 사로잡혀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게하는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의 외적인능력, 곧 병 고치는 능력에 혹()하여 열광적으로 예수를 찾기에 급급하였던 자들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기뻐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실로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온전한 깨닿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이들에게 적용될려면 어떤 것이 이들에게 필요한지 사명을 확립하지 못한 채 정치적이고 인기에 영합(迎合)하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고있는지 아니면 세상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교회인지 구분을 못하는 것입니다. 왜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음으로 그릇된 메시야관(8:27-9:1)에 집착했음이 분명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늘 성공주의에 집착합니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우리교회는 사라들이 좋와하는 교회가 되는 성공주의에 집착합니다.

 

 

이들의 부탁을 만류하고 하나님가 깊은 교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의 온 지역을 찾아 가서 온 지역을 다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기도하면서 사명을 확인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지 않는 삶을 정리하고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수 있을려면 기도하고 하나님의 깊은 친밀한 교제에 사로 잡힐때에 만 가능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고 사명을 깨닳은 예수님은 영적인 분별력이 생깁니다.

1:38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 가벼나움에서 떠나서 주님께서는 갈릴리 지방의 각 동리와 마을들로 다니시며 본격적인 저도의 사역을 수행하시고자 결단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일반사람들과 같이, 성숙하지 못한 제자들과같이 단순히 이적이나 일으켜 군중들에게 인기나 얻고 세상적인 부귀 영화나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목적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찾아가서 영원한 천국 복음을 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1:38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훈련시키고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지 단지 기적이나 베풀어 인기를 누리기 위해서 오시지는 않았다. 물론 병고침과 귀신 축출은 중요한 일이지만(39) 그것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근본 목적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야 했다. 실로 마가가 그의 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를 기적 베푸는 자로서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단적 기독론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면 분명히 본문의 말씀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왔노라 - 이 땅에 거룩한 뜻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떠나 세상에 왔노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병환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는 사건을 말함면서 성경은 그리고라고 말씀을 합니다.

1:40 먼저 '카이'(*'그리고')로 연결되었습니다. 또 뒤따라 나오는 마가복음 2장도 (2:1-3:6) 역시 '카이'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40-45절 부분은 1:21-392:1-3:6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나병환자의사건

나병환자가 달려옵니다. 당신이 원하시면 저를 깨끝하게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내가 원하노니 깨끝함을 받으라 이 말씀은 한마디에 수없는 인생을 괴롭히는 병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두가지 명령을 합니다. 고친사건을 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깨끝함을 받은 것을 확인하고 예물을 드리라라고 말하니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고 병고치는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의 명령을 다까먹고 불순종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문둥병(혹은 나병)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의 결과를 상징하는 질병으로서, 그 환자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박탈당한 채 그들의 공동체 밖으로 소외되었다.

율법에는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 한즉 혼자 살되 진밖에서 살지니라"(13:45, 46)고 규정하여 육체적 고통과 함께 대 사회적 고통까지 함께 받아야만 했던 무서운 질병입니다.

 

나의 나병은 영적인 나병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이 원하지 않으며 너 운명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예수께 기도한 나병환자는 '나병을 고침'을 바라기보다 '깨꿋케 됨'을 바랐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 자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문둥병의 깨끝함을 원하는 것은 충격적인 말입니다.

 

그다음에 내가 원하는 것은 나병을 깨끝하게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1:41 민망히 여기사 [ 스플랑크니조마이;filled with compassion,NIV) - 이것은 예수의 문둥병자를 향하신 긍휼과 사랑과 동정심이 생겨서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는 동사입니다.

그러나 더붕요한것인 민망히 여기사는 단어는 의사 누가가 생각을 할때에 분냈다는 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더러운 병이 마귀의 것이라는 사실이 예수로하여금 분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는 것입. 예수의 분냄은 병자나 그가 앓고 있는 병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를 파멸로 이끈 사단에게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지는 행동입니다. 나변환자를 만지는 것은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만지면 부정을 탑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 믿음으로 간청하는 자에게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응답이었다(원하시면 - 원하노니,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만이 깨끝하실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깨끝함을 선언하는 곳이 제사장이고 깨끝함을 받는곳이 성정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그냐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크시고 제사장보다 크십니다.

 

이스라엘의 진밖은 사망의 세계입니다. 어둠의 세계입니다. 사탄의 세계입니다. 이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죄로 이하여 하나님과 멀어져서 사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안에는 빛의 세계 생명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멀어졌습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떠난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고침을 받아도 이러한 사람은 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아도 처음부터 100%순종하지 못합니다.

밖에서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전도사역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 제사장에게 너 몸을 보이고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너 몸을 보이고 예물을 드리는 이러한 정결의 의식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8일이 걸립니다.

희생의 재물을 준비하여 양을 잡아야합니다. 고룬가루를 가져와야합니다. 이러한 8일의 걸쳐서 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며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갈려면 3일 걸려야 합니다. 희생의 재물을 드려야 합니다. 숫양 2마리 암양 1마리 밀가루등을 준비하여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들고 돈이 들어갑니다. 왜 중요한 것은 병을 낳은 것이다. 이사람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치료를 받고 나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의 부탁입니다.

1:43 엄히 경계하사

1:44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 예수께서는 간곡한 어조로 본 치유 이적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않기를 그 문둥병자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두 번째의 부탁입니다.

1:44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 문둥병자에서 고침받은 이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은깨끗케 된 것을 보임으로 정결 의식을 행하고 그 깨끗케 됨을 제사장에 의해 공식적으 로 선포받아야 했다

1:44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 문둥병을 치료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모세의 명령(13,14)(1)제사장에게 판정을 받고(13:16,17), (2)산 새 두마리(two clean livingbirds)와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드리고(14:4), (3)8일후 재차 흠없는 어린 수양 둘과 암양 하나를 드리는 것(14:10)으로 이뤄집니다.

 

이 사람은 두가지를 다 불순종하였습니다.

1:45 그러나 그 사람이...전파하여 - 예수께서 아주 엄격하게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인간의 본성대로 행동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하나님의 뜻에대한 전적인 순종과 절제가 필요합니다., 인내의 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이적만을 주장하는 신비적인 이단을 향한 멧세지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께서는 공공연히 마을에 들어가셔서 사역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오해를 하게 된것입니다. 사역의 주된 목표인 '말씀 전파'를 못하게되셨던 것입니다. 왜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병고치는 것만 들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오진 신비한 이적에 온 정신이 빼앗김으로써 예수의전하는 메시지에는 귀기울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사람의 불순종으로 사람들의 그릇된 메시야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고치시기 위하여 오신느 분으로 이해를 하게 된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부자가됩니다. 병이 낳습니다. 형통합니다. 사람들이 몰려 옵니다. 그러면 부흥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불순종의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이 이것으로 된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부자가됩니다. 병이 낳습니다. 형통합니다. 사람들이 몰려 옵니다. 부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회개와 믿음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병한자가 순종을 하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가요? 제사장이 8일간을 지켜보면서 성전보다 크고 제상보다 크신 진정한 메시야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회개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처럼 알게됩니다.

잘못된 목적으로 가지고 예수님에게 찾아옵니다.

 

1:45 사방에서...나아오더라 - 여기서 '나아오더라'(* , 에르콘토)는 미완료 시제로서 갈릴리 원근 각지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왜 불순종을 기록하였을까?

육체적인 나병은 깨끝함을 받았지만 영적인 나병은 고침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자들가운데 병을 낳고 기적은 많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은 낳지만 병은 고침을 받았지만 자기의 영은 고침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단들입니다.

이단들은 병을 치료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영이 하나님의 깊은 교제로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여 영혼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절제로 나의 영혼이 거룩하게 되고 성화되고 영화되는 것을 영혼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의 덕이 필요하기에 인내하고 참음으로 소망이 생기고 소망이 하나님의 영광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인내와 덕이 나의 영혼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구원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통하여 나의 영혼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기도합니다. 병을 낳기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가 응답이 되면 기도의 자리에서 떠납니다. 병을 낳기 전에는 뜨겁게 기도합니다. 병이 낳으면 기도의 자리를 떠나고 더 이상 기도하지 않습니다.

 

나병은 기도의 부르짓음으로 깨끝하게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병은 이것으로 깨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주의 말씀으로 삼가 깨끝하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깨끝하게 된 것입니다.

죄는 하라고 것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입니다.

병은 낳지만 하라고 것을 하지 않습니다. 병은 낳지만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의 은헤를 입어서도 불순종이 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의 영적인 나병을 거룩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불순종이 치유를 받아야합니다. 사랑하라고 하는데 사랑이 안됩니다. 순종하려고 하는데 순종이 안됩니다.

 

불순종하기전에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걸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불순종의 병이 걸렸습니다. 사랑할려고 하는데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병을 고침을 받앗지만 영혼의 병은 걸리지 않습니다.

 

왜 영적인 좌절합니까? 왜 영적인 낙심합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영적인 좌절합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영적인 낙심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영적인 문둥병이 가장 심각하자가 저입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복음의 참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감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왜요 병은 단번에 고침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병은 반복적으로 계속 노력이 필요합니다. 재창조의 구원은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뜻데로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적인 나병의 세력은 하나님뜻데로 살려고 할 때 떠나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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