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강해 7

2017.12.29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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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강해 7

성경: 마가복음 1:29-34

 

서론

21절과 34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루 생활을 어떻게 뵀는가를 전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드문데 오늘 본문은 안실일 시작부터 저녁까지 다 안식일 하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과 5장 두장에도 예수님의 하루 일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안식일이 아니고 평일의 하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1절과 34절까지는 예수님의 안식일에 하루 생활을 기록하는데 세가지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위하여 이땅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기위하여 백성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로 다시 죄에서 승리하여 사탄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아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시고 이복음을 마음으로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할것인가를 두 번째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첫 번째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을 받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믿음을 가지는 것 이 두자기로 하나님의 나라가 내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믿음을 가지는 자에게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면 사탄의 어두움의 통치에서 치유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안식일에 첫 번째의 사역이였습니다.

 

예수님의 안식일에 두 번째의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시고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수여하시는 것이 두 번째의 안식일에 사건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듣게하고 회개하고 믿게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불러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 믿음의 반응을 하여야 합니다.

두가지입니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은 회개의 행위입니다. 따라가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부리심에는 항시 회개와 믿음으로 응답하여야 합니다.

 

세 번째의 안식일의 사건은 21-28절인데 예수님의 첫 번째의 사역인 가버나움의 귀신을 좇아 내는 사건입니다. 귀신을 좇아내는 사건을 사람속에 있는 사탄의 통치를 끝장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혀서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들어가기 위한 예비적인 사역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게 됩니다. 설교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이때는 반드시 죄를 버리고 지금 머무는 곳에서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버리는 것은 극단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일은 죄 된 일을 다 정리하고 나의 하는 행동을 통하여 하나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네 번째 기적은 29-34절은 베드로의 장모 열병를 고치는 사건과 안식일에 해가진 다음에 많은 사람을 대리고 와서 모든 병이 치유받은 사건입니다. 오늘을 이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항시 말씀을 듣고 즉시 버려야 할것이 있으면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말씀에는 항시 두가지의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버리는 것과 따르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의 반응이 나타 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설교를 마치고 복음을 받아 들이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회당에서 나와서 제자인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이 걸렸습니다. 이때 병은 죽을병입니다. 이때 열병에 걸리면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의 열병은 죽음의 병이 였습니다.

아마 지금 말라리아와 비슷한 병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말라리아 비슷한 병이 걸리면 죽은 병이였습니다. 지금도 말라리아가 무서운 병입니다.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에 예수님에게 베드로의 장모님을 죽을 열병에서 고쳐 달라는 청을 하게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설교를 마치시고 귀시들린자에게 귀신의 축출하는 사거을 보는 인간들은 귀신의 축출사건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에 사탄의 다스림에서 추방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쳐 달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좇아내시던지 베드로의 장모의 질병을 고치시던지 성경에는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여러가지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사건을 볼때에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8장에는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실때에 누구도 기도로 베드로 장모를 고쳐 달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고 예수님의 스스로가 자기의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사건으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병을 치료하고 질병에서 벗어나고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님이 스스로 복음을 믿고 의지하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치료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것이 이두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로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우리에게 기적이 체험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성도는 기도하는 성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응답받고 기도를 통하여 질병에서 치유되고, 예수님에게 질병이 있스면 기도하고 사업이 어려우면 기도하고 자기의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고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이 치유를 경험하고 사탄의 지배에서 차츰차츰 벗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나라의 교훈과 제자들을 부르시고 치유 사역을 마무리 짓고 한적한 곳에 세벽의 미명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기도하느 시간은 아마도 오늘날의 새벽 3-4시경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새벽 3-4시경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나갈릴리 가버나움 교외의 광야 지대로 추정되는 '한적한 곳'으로 발길을 옮기셨던 것입니다.

 

기도강조

예수님은 세례받으실 때(3:21), 열 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6:12), 오병 이어의 이적을 베푸실 때와 그 일 후에(6:41,46),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시고자 할 때에(9:18), 변화산에 계실 때에(9: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도 오라"고 하신 사랑의 초청 직전에(11:25-30),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부인하기 전 그를 위하여서(22:32),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시던 날 밤에(17), 겟세마네 동산에서(14:32, 35,36, 39), 십자가 위에서(23:34), 그리고 그의 부활 후(24:30)에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으로 죽을 병을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기도의 요청의 사람으로 인하여 베드로의 장모의 병이 낳다는 것입니다.

 

구신을 쫓아 낼때는 귀신에게 명령을 하고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칠때는 아무말도 없이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귀신을 좇아내는 것을 사탄의 나라에 직접적인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직적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다시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은 사탄의 나라에 간접적인 역사입니다. 이러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좇아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우리의 가족의 문제 질병의 문제 이웃의 문제 친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응답하십니다.

나의 기도를 이용하여 나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감동하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1:2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나와다고 말씀을 합니다. 회당에서 나와다는 이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 사건과 귀신을 축출하신 사건과의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듣고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역사가 두 번째로 기다리고 있는가를 경헌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나와서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와 그의 네 제자들은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직행했습니다(8:14;4:38). 베드로는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30;고전 9:5)

의 장모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집을 '시몬과 안드레의 집'이라고 말한 것을 볼때 시몬의 형제 안드레도 베드로와 같은 집에 함께 기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의 병으로 보고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좇아 내는 것을 본 사람이 요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장모에게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싸이클입니다. 기도하고 체험하고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예수님의 축복과 치유를 체험하고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느 것이 전도의 싸이클입닏.

 

예수님을 전도하고 소개하는 일에 소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일에 소홀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과 치료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전도하는 사람은 같은 것입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전도가 강하여 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체험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전도도 약하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체험이 크면 클수록 전도의 체험도 큽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체험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처험과 전도는 같은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는 사람은 삶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누웠던 사람을 이르켰다는 것입니다.

130절에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 마가는 단지 시몬의 장모가 병들어 누워있는 사실만을 언급하지만 의사 출신이었던 누가는 누가복음에 그녀가 '중한 열병'(4:38)으로 고통받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라리아 병으로 구웠는데 아주 오래 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웠는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케이토'는 과거 미완료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 병이 장기적으로 오래 지속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탄의 간접적인 영향도 죽을 병에 걸리게 한 것입니다. 죽을 병은 사탄의 간접적인 영향입니다. 사탄의 간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예수님의 치유밖에 없습니다.

 

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병을 치유하실 때 취하시는 특징적인 행동으로서(41;5:41) 환자에 대한 예수의 적극적인 사랑을 잘 나타낼 때 쓰던 단어가 손을 잡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과 달리 누가복음에는 똑같은 내용을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으신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39), 이는 의사 출신인 누가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의 원인을 사단의 간접적인 활동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13:16) 사탄의 간접적인 역사로 보기에 꾸짓은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사탄의 활동은 꾸짓는 것입니다.

아무튼 마가복음과 누가복은은 똑같은 베드로의 장모 열병을 치료하는 사건을 통하여 두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병을 치료할때에 환자에 대한 예수의 적극적인 사랑을 나타 냄으로 치료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병은 사탄의 간접적인 역사이므로 사탄의 활동은 꾸짓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병은 두가지의 역사로 치료가 됩니다. 사탄의 간접적인 역사를 중단키심으로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적극적이 사랑이 아니면 치료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두자기의 역사로

1:31에 열병이 떠나고...수종드니라 - '떠나고'에 해당하는 '아페켄'은 부정 과거형으로서 이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이 즉각적으로 단번에 나은 사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탄의 간접적인 다스림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사탄의 죄악 사망에서 벗나는 성도들은 즉작적으로 사탄의 활동에서 죄의 활동에서 벗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기가 들어오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수종들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두가지입니다. 벗어나고 따르고 회개와 믿음의 싸이클입니다.

 

믿음의 반응은 '수종드니라'에 해당하는 '디에코네이'(* )는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계속하여 수종드는 현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같은 확실한 구원의 확증을 받은자에게는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위가 한번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하여 뒤따르기 마련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면 계속 수종하는 마음이 들어서 계속 죽을때까지 수종을 들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 봉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번째로 생각하여 할 말씀은 안식일이 끝나고 해질때에 병자들을 대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많은 병들은 자들을 대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도 누가 복음과 요한 복음에 다 해질때에 병자들을 대리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이 끝나고 저물어 해질때에 예수님에게로 대로오는 것을 강조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저물어 해 질 때에 많은 병들은 자들을 대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왜 안식일이 끝나는 밤에 예수님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대리고 왔을가요?

요한 복음 3장에도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올때도 밤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토요일 오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각을 기다렸다가 병자들을 운반해 와 예수께 고침받기를 원하였다.는 것입니다. 병자들을 운반하는 일체의 노동 행위가 안식일에는 금지되어 있었습니다(17:21). 그러기에 안식을 다 지키고 밤에 모든 병자...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어떤 질병도, 또 아무리 많은 환자라

도 우리가 요청만하면 기도만하면 다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고하고 안식일을 다 지키고 찾아온 믿음에 대하여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예수님에게 즉시 대려오지 않고 안식일이 끝나고 대려 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는 사건을 보고 귀신들린 사람들의 병을 꾸짓으면서 고치는 사건을 보면서 집에가서 어머니 아버지를 즉시 대로고 와야 하는데 안식일이 다 끝나는 시점까지 기다리고 밤에 대리고 왔다는 것을 강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소중히 기는 것을 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좋게 보시고 예수님도 안식일을 지키는 믿음을 좋게 여기시는 것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저자의 의도와 달리 거뚜로 해석을 합니다. 안식일은 중요하지 않고 구원과 치유만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중요하지 않고 구원과 치유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건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치유 예수님의 구원만 강조하지 이렇게 안식일을 존중하고 안식일을 소중이 여기는 것을 소홀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성도을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은혜 예수님의 치유 예수님의 구원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다 무시하여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을 뿐만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안식에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급하니까 제끼고, 놀러가니까 제끼고, 조중하지 않으니 재끼고 성도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소중히여기지 않으면 신앙에 문제가 생깁니다.

병낳은 것이 급하고, 귀신에서 벗어나 죄와사망에서 벗어 나는 것이 급하고 구원이 급하지만 안식일이 지나도록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안식일이 지나가도록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때 안식을 다 재끼어야 하다. 귀신에서 벗어나 죄와사망에서 벗어 나는 것이 급하지 안식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급하냐 이것을 유대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배워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만 나가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는 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고 하였으니 안식일을 지키시고 난후에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이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고 지키라고 했으니 안식일의 지키고 나서의 치유와 은혜의 사건을 경험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급하다고 중요하다고 생략하면 안식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구원을 이야기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 같지만 하나님의 질서와 하나님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에 불응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이 본문을 잘못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이야기 한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이 삐뚤어 집니다.

예수님에게 오는데 빨리 와야지 안식을 다 지키고 안식일의 정신은 배격(排擊)한 채 그 율법의 조목만을 지키는 안식을 다 지키고 밤에 오는 것을 문제가 있는 신앙이다. 이렇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본문이 그러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4복음서다 사람들이 안식일이 다 지나고 기다렸다가 예수님에게 찾아 온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안식일의 질서도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아침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를 이적으로 고치신 사실이 소문으로 신속히 퍼져 군중들은 자기집네 가서 안식일을 지키고 환자들을 많이 데리고 예수 계신 곳으로 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식일에 행하는 기적이 많이 나옵니다.

3장에는 안식일에 손이 마른 자를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18년동안 등이 굽어 있는 환자를 고치는 사건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4장에는 소종병이 걸리는 것을 치유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안식일에 고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엿습니다. 그러나 고쳤습니다.

요한 복음 5장에 38년된 병자가 일어나 걸어가로고

9장은 맹임으로 태어난사람을 흑으로 문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눈을 싯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많이 고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고치는 것을 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도 예수님은 병을 고치셨습니다. 이유는 병이 있으면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치는 것이니다. 병으로안식을 경험할 수가 없는 사람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같으면 귀신이 들려 있으면 안식할 수가 없습니다.

열병으로 죽어가는데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때는 안식일에 병을 고칩니다.

안식일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병이 있는데 어떻게 안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종교 지도자들에게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신은 버렸도다"(23:23)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안식일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안식일에 의와 인과 신을 버리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사건은 안식일에 더중요한 의와 인과 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주일성주 강조

 

몸의 기능이 돌아가야 안식하는 것입니다. 눈이 마비되면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자유가 없습니다. 질병에 걸린데로 머물러 있으면 자유가 없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치유와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까?

주일에 예배을 잘 들여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에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되어 충분한 안식을 함으로 치유와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율법만 지키는 것은 문제입니다. 안식일의 정신을 버린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에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않고 안식일에 율법만 지키는 것은 문제입니다.

여행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않고 1부 예배만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에 율법만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안식일을 지키는 않은 반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안실일에 병을 치료하고 안식일에 마음을 치료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율법으로 보고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다했다는 것은 안식일 지키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식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배만 드린 것으로 율볍을 지키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일예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사소한 일로 주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주일을 하찾케 여기는 사람들은 앞으로 뭔일을 하게 되던지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일루어지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의 쾌락과 돈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킵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안식일을 지키는 데 율법으로 안식을 지킨다는 것이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하락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안식을 주신 날입니다.

안식일 날은 마음을 회복시키는 날입니다. 안식일 날은 우리를 축복하고 복되게 하는 날입니다. 안식일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날입니다. 세상의 짐에서 벗어나게 하는 날입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 날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 되었다는 인식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되어 내가 무어운짐 마음의 갈등 살소망에 대한 것 이러한 것을 다 벗어나서 자유를 주시는 날이라는 것을 이식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어떻게 내가 들어 갈까하는 것을 고민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첫번째 말씀으로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라면 무슨일이 있어도 예배에 올린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내가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하여야 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거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회복이 필요합니다. 안식이 필요합니다. 치유가 필요합니다.

안식일 날은 하루 종일 신앙에 올린하면서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통하여 성령의 자유를 누리고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으로 초대에 내가 응하여야 합니다. 말씀이 충만하면 이제 진리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여행을 가세요. 목사님 여행에서 1부 예배를 드리고 여행을 합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행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행의 장소에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온가족이 온전히 하루 종일 신앙에 올린하면서 성경을 배우고 진리가 나를 자유하게 할때까지 말씀에 은혜를 받고 성령의 자유를 누리고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여행을 하여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1부예배르 여행지에서 드리고 그날 영행을 한다 이신앙은 아름다운 신앙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야 너 주일은 율법이야 복음이 중요하지 율법은 패지 되었어?

구원이 중요하지 주일이 중요하냐? 구원이 중요하지 주일이 중요하냐? 이렇게 사탄이 말합니다.

그러면 사탄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기 못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하나님의 안식으로 초대하고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의 기쁨과 안식의 누림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안식의 능력으로 우리가 맘도 몸도 회복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안식의 싸이클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영적으로도 회복이 필요합니다.

뇌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이나 배우는 것이 배우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십니다. 잠을 잘 때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을 누릴때에 정이가 되는 것입니다. 잠을 자야합니다. 그래야 잠을 잘때에 머릿속에서 정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시험을 볼 때 잠을 더 잘 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고 행복하고 하는 것의 의미할때 안식일에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주지 못하는 휴식을 안식일에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이다. 지헤로운성도는 하루종일 하나님의 안식에 초대되어 하루종일 안식에 초대되어 하나님의 안식일에 나의 모든 것이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기능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치는 부분을 회복시키는 것은 말씀을 묵상할 때 배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올인하여 경건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십니다.

각색 병든 많은 사람 예수께 나아온 병자들의 양상을 보여 주는 말로써 그 병증이 매우 다양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서로 다르게 고난의 양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치유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이적을 대별(大別)하면 귀신 축출, 질병 치유, 죽은자를 살림 이러한 일을 주일에 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마가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바로 귀신 축출이었다.

 

네 번째로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귀신들린 사람들은 교회에서 잠잠케 하여였다는 거십니다.

1:34절입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의 말을 잠잠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위시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영적 감지력(感知力)이 뛰어난 귀신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4:41).사실 귀신들은 지적인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1:24), 자신의 운명(8:29) 그리고 구원의 계획(2:19) 등을 알았습니다. 귀신들은 그들 나름대로 잘 발달된 지적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딤전 4:1-3). 이 사실은 이미 24절에서도 잠깐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귀신들의 말을 허락지 않습니다.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 마가는 예수께서 귀신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실로 귀신들도 지..의를 가진 인격적 존재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마가는 예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 침묵을 명하신 것이 아니고'귀신'에게 말을 못하게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예수께서 귀신의 말을 허용하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구신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면 상황은 어떠했겠는가? 아마도 그들은 24절에서와 같이 당신은 '하나님의거룩한 자'라고 서슴없이 외쳐대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악한 존재에 의해 그 신분이 밝혀지기 전에 먼저 말씀과 행동으로 자신이 어떤 모습의 메시야인가를, 즉 당시 사람들이 갖고있던 메시야 개념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메시야이심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예수께서는 오직 구원받은 자기의 백성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온 천하에 전파되기를 원하셨다(16:15;1:8).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께서는 아직 당신의 존재를 공개하실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침묵을 요구하셨던 것이다.

 

교회에서도 성경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떠들어 대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가 산으로 갑니다. 교회가 세상으로갑니다. 교회가 타락합니다. 교회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안식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여인들은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궁금하는 것이있으면 남편에게 물어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합니까?

교회에서 잠잠하라

목사의 의도를 모르고 말을 하게되면 교회가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사탄의 소굴이 됩니다. 세상의 소굴이 됩니다. 세상의이치가 교회에서 통합니다. 성경의 원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의 음성에 귀를 귀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구원과 구원의 질서와 하나님의 안식이 회복이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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