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강해 6

2017.12.29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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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강해 6

성경: 마가복음 1: 21-28

 

주제

 

서론

전주에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받아서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첫 번째는 회개하고 두 번째는 말씀을 받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믿음을 가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내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말씀으로 믿음을 가지는 것으로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첫 번째의 수해자가 제자들의 4명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에게 예수님이 찾아 왔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은 회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반응은 말씀을 듣는 즉시 일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반응을 할때 다음에 한다는 사람을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요 말씀을 듣고도 즉시 방응을 하지 않으면 말씀을 듣고 한 하루 지나면 말씀의 능력의 강도가 사라집니다. 그러니 믿음의 반응은 항시 성경은 즉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에게 즉시 따르지 않은 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러게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든지 가든지 나는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둘 집도 없다. 고생을 많이 한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어떤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따르지 않던 사람의 이야기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장례하고 내가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들이 장례하게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따르지 않던 사람의 이야기를 또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잡별인사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조건을 재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하고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내가 아이들 대학교 까지 다 보내고 나서 주님을 다르겠습니다. 이때는 안된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을 듣고 두가지의 역사가 일어 나야 합니다. 회개와 믿음의 역사가 즉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구원의 운동입니다.

 

제자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시는 장소는 사탄의 나라입니다. 바다입니다. 사망에 거하는곳입니다.

바다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은 사탄의 나라에서 제자들을 부렀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사탄의 나라를 말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이 나라의 구원 사역의 시작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가르치시고 바다에서 제자를 부르시고 바다에서 배를 타고 배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배를 타고 디베라 해변을 가다가 풍랑이 일어서 풍랑을 잠잠케 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이방인의 땅에 가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나라에서 우리를 구원하기위하여 부르실때에 말씀을하십니다.말씀에 은혜를 받게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두가지의 반응을하게합니다.

버리고 떠나게 합니다. 회개하게하고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가 죄가운데 거하느 곳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의 사역인 가버나움의 귀신을 좇아 내는 사건입니다. 귀신을 좇아 내는 사건을 결론부터 말을 하면 사람속에 있는 사탄의 통치를 끝장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혀서 예수님의 다스림으로 들어가기 위한 예비적인 사역을 말합니다.

 

구원에는 예비적인 사역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전에 어떤 사건이 인간에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병을 고치는 사건이 있습니다. 병이 고쳐졌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아닙니다. 10명의 문둥이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가운데구원을 받는 10명의 문둥이중에 한명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병고침을 받았가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다 구원의 예배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병을 고칩니다. 마음을 고칩니다. 이것이 예배적인 사건입니다.

 

마태복음의 첫 번째의 기적은 문둥병자를 정결하게 하시는 사건입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의 예비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는 영적인 나라로들어가려면 영적인 감각이 살아 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영역에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감각없는 나병을 낳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일원입니다.

 

요한 복음의 첫 번째의 기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느 사건입니다.

결혼과 포도주의 이야기는 우리의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 하나님이 구원을 이야기할 때 포도주의 풍성함을 이야기 합니다. 결혼의 회복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구원은 결혼으로 늘 이야기 됩니다. 구약은 구원을 혼인잔치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신랑 우리는 신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를 이혼의 관계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관계를 이혼의 관계로 봅니다. 죄악된길을 가고 ,우상을 섬기는 음부를 따라가는 관계를 이혼의 관계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과 결혼의 때를 이야기 합니다. 결혼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 합니다.

구원은 결혼의 기쁨으로 비유를 하였습니다.

구원은 신랑이 신부와 결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도주입니다.

포도주는 결혼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포조두의 지유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구원의 즐거움을 주는 내용입니다. 구원에 즐거움에는 "--포도주가 없다"(3)고 잔치집의 문제를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에는 전혀 기록하지 않고 있는 사건입니다.

가버나움에서 귀신을 좇아 내는 사건을 말씀을 한 것은 구원의 예비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니다.

 

사람들은 다 사탄의 통치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철학에 사로 잡혀 사는 것, 질병에 사로 잡혀사는 것등 사탄은 수없이 사람들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첫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좋은 사고와 철학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죄와 사망에 거하는 사탄의 통치에서 사람을 자유롭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노력으로 죄와 사탄의 통치에서 자유를 누릴수가 없기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죄와 사망의 사탄의 통치에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와 사망의 사탄의 통치에서 어떻게 벗어날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사탄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기위하여 가벼나움에서 첫 번째로 하시는 것이 설교입니다. '가버나움'은 호수가에 위치해 있었고, 제자들이 부름받은 갈릴리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가벼나움의 회당의 설교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서기관과 같은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지역의 랍비들입니다. 회당장은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의 공동체를 위하여 기여하고 그러한 존경의 사람들에게 회당장을 맡깁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않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쳤습니다.

안식일에 -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가 지는 시점부터 시작된다. 바로 이때 안식일 예배 중 첫번째 예배가 진행 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때 안식일이 되기 전 금요일에 이미 회당 안으로 들어가셨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회당의 기원은 바벨론 포로 생활 중 성전을 상실한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율법을 연구하던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 회당에 들어가시자마자 가르치기 시작한 것을 묘사하는 '에디다스켄'(*)은 미완료 동사입니다. 금요일부터 시작된 안식일에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회당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방문 교사들 또는 권위 있는 선생들에게 허용되는데, 그들은 주로 그 회당에서 율법이나 선지서를 읽으며 그 읽은 바를 풀이하고 설교하기도 했다. 한편 그때 회당에서 이루어지던 의식은 오늘날의 예배 의식과 비슷한 것으로서 기도, 찬양, 성경 봉독, 그리고 랍비(Rabbi)나이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에 의한 설교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 서기관들은 가르쳤지만 권세가 없었습니다. 전통에 붙잡혀서 설교하였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는 '놀라니'에 해당하는 '엑세플레쏜토'()'밖으로'를 뜻하는 '에크'(* )'친다'를 뜻하는 '플레쏘'()의 합성어로서, 이는 문자 그대로 놀라움과 경이에 가득차서 '정신이 멍하다',는 뜻입니다. '넋을 잃을 만큼 감동을 받다'를 의미한다. 본문의 의미는 그들이 순간적으로 놀라고 그친 것이 아니라 한동안 놀라움에 휩싸여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단어입니다.

 

왜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놀라게 한 설교가 무엇입니까?

너희들을 이렇게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혼에 대하여 이렇게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원뜻이다. 이렇게 권위있게 가르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권위는 본질, 존재로 부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본질 성경의 본질로 붙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태초에 본질입니다. 원례부터 하나님입니다.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삶도 하나님입니다. 말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모든 행동도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인격의 인격을 형성할 때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사상을 형성할때 진정한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인격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사상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이 될 때 성경의 권세가 나옵니다.

말씀의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로 다스림을 받는 인간들이 구원의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1:23 마침( ,유뒤스)

이러한 말씀을 예수께서 가르치신 교훈으로 회당 내()가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득차 있던 바로 '그 시점' 이라는 뜻입니다. 가진 예수님앞에 귀신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노력으로 죄와 사망과 사탄의 통치에서 자유를 누릴수가 없는 인간이 말씀을 듣고는 어떤 결과를 가져 왔을까?

 

23절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

26더러운 귀신이

27 더러운 귀신들에게

더럽다는 귀신들린 사람은 더러운 영이라는 뜻으로 쓰여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귀신이라는 단어나 11번 나옵니다.

그러운 영이라는 단어가 11번 나옵니다. 그런데 한글성경은 다 더러운 귀신 이거나 귀신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더러운 영 (프뉴마티 아카다르토) '더러운 영'은 선한 의지와 도덕성이 완전히 상실된 그야말로 악의 실체가 되어버린 영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과일을 먹는 날에는 죽었습니다. -이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따먹고 영적인 사망을 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영적인 죽음을어떻게 경헌하였습니까? 자신이 달라 졌습니다. 어떻게 달라 집니까? 영적으로 죽기전에 하나님과 교제의 기쁨이 되엇는데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즐거움과 행복이 아니라 두려워집니다. 공포의 대상입니다.

영이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봅니다. 영적으로 죽고서는 이제는 세상을 보는 눈이 하나님의 시각을 버리고 자기의 시각으로 세상을 봅니다.

작의 사각으로 세상을 보니 사망이 생명으로 생각합니다. 저주를 복으로 생각합니다. 죄가 의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죽어 있는 상태이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죽어서 더러운 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더러운 영은 바울은 롬 1장에서 3장까지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와 사망과 사탄의 사로잡혀 더러운 상태를 말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하찬케 여긴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의지도 없습니다. 인간의 영이 더러운 영이 되어버린 상태를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인간의 불의함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 인간의 무능력하게 된 것을 더러운 영이에 사로잡힌 상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더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안에 거할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불의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 우주적인 불의에 있어서의 인간의 더러움을 말합니다.

로마서 3: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가운데 더러운 가운데 살아 가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에 다 결핍이 되었다는 있다는 것입니다. 이르지 못하다는 것은 결핍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더러움을 가득한 우상숭배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더러움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들이 좋와하고 선호하는 것으로 다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본질입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하찾게 여기고 사람들이 좋와하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다 바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찾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소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8절에는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사모하고 성경속에서 말하는 주의 영광을 볼 때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세주의 형상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일은 우리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3:18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들이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을 실천할 때 이런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우리들 삶의 중심으로 만들고 주님이신 그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더러운 영의 반대는 거룩한 영입니다.

더러운 영이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면 인간은 더러워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찾게 여깁니다.

거룩한 영이 역사하면 인간은 거룩하여집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인간은 거룩하게 됩니다.

사탄의 나라의 운동은 더러운 영이 역사하도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을 하찾게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은 거룩한 영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역사하니 거기에 어두움이 있습니다. 더러운 영이 역사하니 죄가 충만합니다. 더러운 영이 역사하니 거기에 구역질 나는 것이 충만합니다 더러운 영이 역사하니 거기에 흉측한 것으로 충만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거룩한영의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영으로충만한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영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거룩한 영으로 악한 영, 곧 마귀의 일을 파괴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요일 3:8). 한편 더러운 귀신들린 자의 첫반응은 '소리질러'(*아나크 라조)란 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사라들은 더러운 영이 인간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대 의학이나 심리학, 심지어는 현대 신학자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더러운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농후(濃厚)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이 회당 내()에서 예수님의 설교와 말씀으로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득차 있던 바로 '그 시점' 에 더러운 귀신들린 살마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23절입니다. “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를 질러 가로되

무어라고 소리를 지릅니까?

24절입니다.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광이 있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어룩한 자니이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아 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자입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원문을 직역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의미상으로는 '당신이 왜 우리를 괴롭히려 합니까'라는 뜻이다(8:29)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우리를 괴롭히려 합니까? 왜 우리를 멸하려 왔습니까?

우리는 귀신들과 더러운 영에 사로밥힌 가버나움의 회당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을 멸하려고 왔습니까? 이말은 귀신들린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예수님에게서 지켜 줄 것이다. 이뜻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통치가 못미치도록 예수님에게 지켜 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를 멸하려 왔습니까? 이말은 요즘말로 말하면 저렇게 예수님이 가버나뭄회당에서 설교를 하는데 저 설교대로 따라가면 우리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망한다. 말씀대로 살면 망한다. 이것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하는 말씀입니다.

잡신을 섬긴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망한다. 잡신을 섬긴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소가 죽던지 아들이 죽던지 자녀가 죽던지 망한다. 이뜻입니다. 실재로 사탄이 이렇게 역사합니다.

 

그러면 더러움에 사로잡힌 사라들이 정신을 바짝차립니다. 야 우리가의 가정이 망하면 안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정은 죽는다. 안된다. 이렇게 초창기에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그러니 까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 대하여 폭로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1:24 나사렛 예수여 - 회당에 더러운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예수에 대하여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이 더러운 영을 가진 사람은 '나사렛 사람' 혹은 '나사렛에서 온 사람'을 강조합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으며 따라서 천한 신분을 가졌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결국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術策)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당시 일반 사람들의 통념 속에서는 '나사렛'이라고 하면 경멸의 뜻으로 인식되어졌다. 왜냐하면 그곳은 종교, 문화적으로 선민적 특권을 누리던 예루살렘 및 유대 지경과는 동떨어진 이방의 초라한 고을이었기 때문이다(9:1,2).

 

그러니 여기 가버나움은 나의 구역이다. 내가 통치하는 구역이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은 절대로 되지 않아 그러한 뜻입니다.

더러운 영은 사탄의 나라의 운동은 하고 거룩하 영은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을 합니다.

더러운 귀신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작두무당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간증은 귀신을 거짓말의 명수입니다. 너누구냐? 나는 당신의 할머니다. 당신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말하는데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귀신의 말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의 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계속 거짓말을 말하도록 허락지 않습니다.

34절입니다. 하반절에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귀신을 침묵하고 잠잠하고 거기에서 나오라는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1:25 잠잠하고...나오라 - 예수께서는 완전히 타락한 귀신에게서 자신의 메시야직에 대

한 증거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귀신과 사단은 이 거룩한 증거에 끼어들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잠잠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모데티'(* )'피모오'

(* )의 부정 과거 2인칭 단수 명령형으로 원뜻은 '입에 자갈을 물리라'로서

더 이상 소리치지 말라는 단호한 명령인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Robertson)'소에

게처럼 입에 망을 덧씌울 것이라'는 말로서 번역하여 더욱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오라'는 명령 역시 더 이상 지체치 말고 즉각적으로 그 사람에게

서 떠나라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 예수께서 귀신을 상대하시는 유일한 방법은 '꾸짖는

'이다. '꾸짖다'(* ,에피티마오)는 말은 '말로써 엄하게 경고하

'는 뜻 외에 '벌하다','책망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어 그 꾸짖음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실로 귀신을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타협이나 회유(懷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히 꾸짖고 책망하는 것이다.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나오지 안으려고 합니다. 왜요 귀신이 예수님이 명령을 하는데 나오지 않으면 예수님보다 귀신이 더 쌔다는 것을 알릴려는 것입니다 .

아무리 저항하여도 예수님의 능력에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1:26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스파락산 아우톤) - 이것은 마치 위경련을 일으키듯이 '발작하며 몸부림을 치게 하고'라는 뜻이 아닙니다. 흠정역(KJV)에서는 이 구절을 '그 때에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을

상하게 하고'(And when the unclean spirit had torn him)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 나오면서 사람을 상하게 합니다. 해를 가합니다. 망하게합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 '큰 소리'(* 포네 메갈레)란 어떤 크나큰 충격에 의해 강렬한 음성으로 내뱉는 비명을 가리킨 것입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 내기위하여 때립니다. 안찰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사고를 많이 납니다. 관절이 나아가고

1] 귀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그 마음에 있지 아니면 나가지 않습니다.

2]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낳게 할때는 손을 댑니다. 소경의눈을 뜨게 할때고 손을 댑니다. 그러나 귀신을 내 좇을때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왜 손을 댄다고 때린다고 귀신이 재압된 것이 아닙니다.

3] 귀신을 좇아 내는 의식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갑니다. 구원을 위한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병이 낳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위한 초대의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슴이 나의 생각이 되게하고 나의인격이 되게하고 나의 삶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데 기적을 행하는 것은 사이비교주가 됩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은 말씀의 운동입니다. 말씀이 강력하게 증거되는 곳에 사탄의나라가 무너집니다. 말씀이강하게 역사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더러운 영이 힘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져오는 능력, 말씀이 가져오는 평안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이 가져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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