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강해 5

2017.12.29 04:21

admin 조회 수:144

마가복음 1장 강해 5

성경: 마가복음 116-20

 

제목: 제자

 

서론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죽자 예수님이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사람이 첫 번째로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고 난 다음에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첫 번째로 해택을 입은 자들이 됩니다 .

 

갈릴리 바다가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이였습니다.

16절에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을 부르신것입니다.

37절에 바다로 갔다는 말이 나옵니다.

 

갈릴리를 지나가시다가 어부의 일을 열심하는 갈릴리 어부 출신 형제인 시몬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순간은 어부의 직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을 부르는 장소는 생업의 현장입니다. 어부의 일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유명한 사람이나 한자들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제자들로 불렀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귀한일을 맡기는 사람을 평번한 사람을 부르신것입니다.

 

이당시는 헬라철학과 그리스철학이 최고로 발전하고 있을때입니다. 헬라 철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최고의 스승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고 있는 평범한 어부 베드로 안드레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부르시는 방법입니다. 제자들을 선택하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헬라철학과 그리스철학자들이 제자들을 선택을 할때에 이들이 스승의 소문을 듣고 찾아 옵니다. 이때 테스트를 합니다. 이들이 학문을 잘할후가 있나 아니면 학문의 깊이를 잘할수 있나? 이러한 것을 테스트 합니다.

랍비가 자기들의 제자들을 모입할 때 구약의 율법을 잘 알고 있나 모르고 있나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 이러한 것을 보고 제자들을 뽑게 됩니다.

이들은 여기저기 돌아 다니면서 제자들을 뽑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아와서 이들이 학문을 더 알기를 원할 때 이들에게 제자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돌아 다니면서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부가 가장 싫어 하는 사람은 레위입니다. 알페오의 아들 래위를 불렀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면 이 레위인에게 세금을 내게됩니다. 이때 얼마나 감정이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성을 알아보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든지 가든지 나는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둘 집도 없다. 고생을 많이 한다.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장례하고 내가 예수님을 따르겠습니다.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들이 장례하게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잡별인사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조건을 재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하고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주님 내가 아이들 대학교 까지 다 보내고 나서 주님을 다르겠습니다. 이때는 안된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는 곳이 조건을 재시하는 사람이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수는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돈이 많은지 적은지 신분이 높은지 낮은지 이러한 것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뜨겁게 일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부르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명을 듣는 장소가 삶의 현장입니다.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 먼저 여기 제시된 '그물'(*암피블레스트론)은 예수께서 비유 중에 흔히 거론하셨던 큰 그물, '예인망'(*사게네)이 아니라 손 그물, '투망'(投網)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손 그물로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도중에 예수께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받은 사실을 현장감 있게 긴박감을 더하여 기술해 주고 있습니다.

 

17절에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절에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나를 따라 오너라 - 듀테 오피소 ) 예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그러

한 방향으로가 아니라 예수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리로' 혹은 '이 새로운 방향으로' 따라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 그들은 과거의 모든 삶을 과감히 청산(淸算)하고 주님을 따라 나섰던 것이다. 진정 어부들에게 있어서 '그물'은 배와 더불어 그들의 생존의 근거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버리는 데에는 과감한 의지적 결단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의 부르시는 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기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베베대를 삯군들화 함께 배에 버려두고 에수를 따라가니라.

 

세베대의 아들입니다. 이 세배대는 어업의 규모가 컷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자들에게 고지를 잡아서 팔았습니다. 자기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각오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아내도 살로매도 자기의 아들을 성공시키려고 하여 예루살렘에 정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에 제사장을 사귀도록하었습니다.

 

베드로의 아버지처럼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사람을 부르시고 요한과 야고보의 아들

엘리야 부모가 누구인지 몰라고

엘리사- 사밧의 아들 엄청난 부자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 주지조 않는 나를 주님이 불러 주어서 예수님을 믿게 하다니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하여 볼 것은 갈릴리 바다에서 처음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갈릴리 바다입니까?

 

결론부터 말을 한다면 바다에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은 사탄의 나라에서 제자들을 부렀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사탄의 나라를 말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의 하나님이 나라의 구원 사역의 시작은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가르치시고 바다에서 제자를 부르시고 바다에서 배를 타고 배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배를 타고 디베라 해변을 가다가 풍랑이 일어서 풍랑을 잠잠케 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이방인의 땅에 가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난후에 제자들로하여금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하시고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타로 가면서 풍랑을 만나서 밤세도록 고생을 할때에 예수님이 바다의 물위로 걸어서 오시면서 베드로의 믿음을 바다에서 시험하시고 바다를 꾸짓고 바다를 잠잠케 하는 사건이있습니다.

이러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건지시는 사건입니다. 사탄의 나라에서건져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은 구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바다는 죄와 죽음을 말합니다. 사탄의 통치하에 살아가다보면 죄와 죽음을 가져옵니다.

사탄의 나라에 있는 자들이 죄와 죽음을 경험하게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에굽에서 구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앞에 홍해가 놓여 있습니다. 이 홍해뒤에는 사탄의 세력인 에굽의 군대가 이스라에 백성을 죄와 사망에 노예의 생활을 계속하게하기위하여 뒤에서 쫓아 옵니다. 이때 사탄의 세력을 바다에 몰살을 시킵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바다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군대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홍해가 갈라질때는 밤이 세도록 세도록 바람을 불러서 갈라지게합니다. 그러나 이 홍해의 바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다 지나고 난후에 합쳐질때는 단숨에 합쳐집니다. 이것은 사탄의 세력을 바다에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구약의 홍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하고 사탄의 세력을 바다에 죽이는 것이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오셔서 구약의 배경으로 사역하고 있는 곳이 갈릴리 바다입니다.

갈릴리 낭만과 환상이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바다는 인간이 빠져 있는 죽음과 절망과 좌절이 잇는 곳입니다. 이속에서 우리 주님이 당신의 백성을 건져 내시고 오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제자를 부르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1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나를 따라 오너라 -예수님이 먼저하고 뒤를 따라가면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는 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어부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부입니다.

예레미야 에스겔서에 하나님이 어부라고 하였습니다.

바다에는 사탄의 지배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하나님이 사탄의 나라에 낙시를 던집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탄의 지배를 받은 사람이 걸립니다. 이사람은 반드시 사탄의 지배에 대한 심판을 행하였습니다. 그러고 그 바다에 있는 고기들은 다 이렇게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부로 오셨습니다. 바다속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배성들에게 생명의 그물을 던집니다. 거기서 걸려 올라오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이아니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다에 사탄의 나라에서 건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마지막나라에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사탄의 나라에서 건져 주신느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이렇게 사망에서 사탄의 지배에서 영원히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구원의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죽은의 있는 자들을 생명으로 죽음의 심판을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생명으로 어둠에 있는 자들을 빛으로 그물을 던져거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제자들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나라에서 백성을 건지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탄의 나라의 백성을 건져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나라의 백성을 제자인 우리가 어떻게 건집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도하여야 합니까? 그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사탄의 백성들을 바다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을 건지지 못합니다.

단하나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야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듀테 오피소 ) - 원문에서'오너라'(듀테)는 말앞에 '이리로...' 또는 '다라'(오피스)라는 부사어가 첨가되어 있는 점에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가 이때까지 살아왔던 그러한 방향으로가 아니라 사탄의 지배하게 살았던 그러한 삶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리로' 혹은 '이 새로운 방향으로' 따라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유의하여야합니다. ...되게하리라'(* 포이에소)는 목적이 수반되어 있습니다. 즉 그분의 부르심은 허황되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목적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르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다스림을 받게되는 위대한 주역의 역할을 맡기시리라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따라 오리는 것입니다.

버기고 딸았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아버지와 종들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초대가 얼마나 강력하였던지 이러한 초대를 거부하면 사탄의 나라에서 영원히 멸먕을 받겠구나 하는 직감을 가지고 즉각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여야야 합니다. 이제 사탄의 지긋지긋 하느 불순중에서 사망에서 즉각 응답하여야 살수가 있습니다. 이번기회에 정리하지 못하면 사탄에게 다시 잡힙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즉각 응답하여야 합니다. 왜요 다시 사탄의 멍애를 메지 않게 하기위하여서입니다.

18절에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그러니 이단들은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따라야 한다. 제산도 0원이 되어야 하고, 통장도 0원이 되어야 한다. 철저히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이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물을 버려 두고 - 여기에서 ''(유뒤스)는 회개의 표현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무엇을 회개하여야 합니까? 자기의 삶이 전체가 사탄의 지배에서 살았던 삶을 포기한하는 것입니다.

좇으니라 - 헬라어 '아콜루데인'은 복음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3)예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8:34;4:25;9:38 ). 이 말에 대한문자적인 뜻을 세분하여 살펴보자면 '아콜루데인'은 접두어 ''(* 여기서는 '일치', '닮음'이란 의미)''이란 뜻의 '켈류도스'()의 합성어로서,

'같은 길을 함께 가다'란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의 인도를 받고 다스림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은 회개의 표현입니다. 복음을 받고 믿을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즉시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의 다스림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버리는 것입니다. -그물을 버리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여태의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타의 종이 된 삶을 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삶은 예수님을 좇은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복음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좇는 다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물을 버렸다는 것은 생개를 버렸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 세베대의 아들 야보고와 요한이 아버지와 형제를 버리는 것은 형제들과 인연을 끈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들이 꼭 이말을 이용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르실때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정리하고 우리 선교단으로 들어오라. 부모와 형제들의 인연도 야고보와 요한이 끄었다. 다 세상의 줄을 다끝어라. 이러한 생각은 불교의 생각입니다. 부처를 따르는 삶입니다. 불교는 입교할 때 세상과 인연을 다 끝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여거서 버려 주었다는 것은 그물에 대한 내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인연을 끝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형제에 대한 생각을 지금의 생각과 다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예수님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것입니다.

부모를 생각하고 형제를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팔고 다 바쳤으니 이제 갈집도 없고, 갈 그물도 없게 만들어라는 뜻이 젼혀 아닙니다.

그물에 대한 태도가 부모와 현제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여테 배와 그물이 생계의 수단이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그물과 배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라는 생각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태 야보고와 요한은 부모가 작의 생의 수단이고 전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작의 생업의 수단이 된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합니다. 왜요 지중해 땅보다 바다가 200이 낮다고합니다. 그래서 바다입니다. 사해도 호수인데 바다라고 합니다. 지중해 땅보다 바다가 400이 낮다고합니다.

그래서 바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산정호수는 땅보다 높습니다. 땅보다 높으면 호수입니다. 땅보다 낮으면 바다입니다.

바다에서 사역을 할려면 배다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면서 베드로의 배를 사용하엿습니다. 자기의 생개의 수단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리는 주님을 따랏습니다. 이것을 제물을 하나님의 나라에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받으니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도구가 그물과 배가되는 것입니다.

배를 버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확장이 되지 못합니ᅟᅡᆮ.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업습니다.

하나님을 따를려면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부를 때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소를 잡아서 잔치를 하였습니다. 이제는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 오지 안는다는 결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으 부르심을 받을 때 단헌번에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의 행동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 가다보면 버릴것이 많이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를 때 단번에 따른 것이 아닙니나. 계속 따릅니다.

제자들은 행동이 안따릅니다. 생각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길을 갈려고하면 이들은 영광을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들으라고 하면 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보으라고 하면 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느끼고 또 버리고 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예수님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여야 하는지 알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예수님이 경허게 여기를 것을 무엇이 알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포기하지 못한 것은 자기의 마음속에 애굽입니다.

어려움을 당할때마다 에굽에서는 내가 고기를 먹었는데 고난을 당할때마다 애굽에는 좋은 집이 잇고 행복하였는데 자기 마음에 애굽이 떠나지 않습니다.

믿음생활을 하다보면 나는 세상을 떠나고 버린 줄을 알았는데 내안에 또 세상이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에 또 세상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반복이 계속될 때 변화되고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떠나고 나서 성령을 통하여 변화를 계속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이들만 기억합니다.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버려야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 성령이여 나를 버리게 하여 달라고 이러한 거룩한 몸부림에 제자들을 만든 것입니다.

주님

어둠에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재능이 나의 재산이 주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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