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강해 3

2017.12.29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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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장 강해 3

성경: 마가복음 1: 12-13

제목:

 

서론

오늘은 성령이 충만하는 성도가 왜 어려움을 격고 시험을 당하는 것을 종종보게 되는데 왜 성령이 충만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가 어려움을 격고 거기서 승리하는 지를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후 광야로 나갔다는 것을 모두 4복음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4:1;4:1).

성령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왜 고난의 장소 광야로 갔는가입니다.

이말은 우리가 성령을 받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의 충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성령의 충만하면 왜 고난의 장소 고난의 현실로 보내는가 한 질문의 답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성령 세례와 광야에서 시험은 서로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유뒤스'(*'즉시') 광야로 나갔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의신후 즉시 예수님을 광야의 시험을 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서'(was led by the Spirit '성령에 인도되어서', NIV) 광야로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에크발에이' '내쫓다'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12절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짐승도 아닌데 예수님을 몰아 내쫏았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몰고 가듯이 몰아 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어는 신약성경에 귀신을 사람의 마음에서 쫏아 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1:34절에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쫏으시되에서 귀신을 내어 쫏으시되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에크발에이'(*'내쫓다'는 단어입니다.

 

광야는 죽음과 외로움이 있는 곳입니다. 인간이 살기에는 어려움이 곳입니다.

광야는 물이 없습니다. 광야는 곡식을 생산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길을 잃으면 죽습니다. 광야를 벗어나야만 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성령을 받으면 광야의 길을 벗어 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로 몰아 넣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훈련을 할 때 광야의 길을 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중에 한 인물을 훈련하고 연단을 할 때 광야에서 연단을 하고 훈련을 시킵니다.

광야에서 훈련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의 시간은 사람이 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을 광야로 몰고 가셨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예수님은 가십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할 때 하늘이 열립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합니다.

너는 내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임하자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시고 40일을 광야에서 시험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40일간 시험을 받았습니다. 천사들이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에게 수종을 들고 예수님은 천사들의 수종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을 40일간 들 짐승과 함께 있으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두자기의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두자기의 사건을 다루고 있을까요?

첫 번째는 예수님의 성령세례의 사건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광야 40일 사탄에게 시험당한 사건입니다.

첫 번째는 전주에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으면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했는지 공부하였습니다. 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다 잊어 버렸습니까?

탁월한 은사입니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전주에 복습을 간단하게 하시겠습니다.

1]하늘이 찟어지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1538절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의 하늘이 찟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면서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의 사이 휘장이 찟어지는 것고 연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임직식에 예수님의 십자가사역으로 휘장이 찟어지는 사역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를받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버림을 받게 되는 것으로 천국의 길이 열리는 것을 하늘이 찟어지는 사건입니다.

하늘이 찟어 짐으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것인데 예수님이 받을 세례를 우리의 물세례가 아니라 저주의 세례 불세례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38절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을 마시는 세례로 표현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세례가 진노와 저주의 세례입니다. 이것을 불세례라고 합니다. 저주의 세례가 불세례압니다. 옛날 죄를 지으면 피를 뿌리고 그 짐승을 태워 죽여습니다. 불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 고난의 잔 저주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진노와 저주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이것을 불세례입니다.

 

2] 예수님의 세례에서 알아야 할것이 비둘기처럼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는 것은 성령의 창조사역을 의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는 것은 창조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창도할 때 혼돈에서 창조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수면위에 운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창조전에 수면은 혼돈의 수면입니다. 혼돈의 수면을 성령이 지배하면서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혼돈의 수면을 성령이 지배하면서 창조의 질서를 만들어서 생명의 세계를 만들엇습니다. 이사역을 비둘기처럼 성령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내속이 비둘기처럼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

 

노아 홍수에 비둘기 가 수면위를 날라서 하나님의 심판의 저주가 물러가고 새로운 세계가 임 임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성령의 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구원의 사역을 하게 하고 그성령이 우리속에 임하여서 우리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의 사역을 하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망가진 우리를거듭나게하고 죄로 망자긴 인격을 바로 잡아주고, 죄를 십자가에 목밖에 하고 내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는 재창조의 역사를 하게하는 성령께서 하실 것을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고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둘기와같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3] 하늘에서 음성이 들였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저주를 받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늘의 음성은 구약 성경에 세군데가 나옵니다.

창세기에 나온 내용입니다. 시편에 나온 내용입니다. 이사야에 나온 내용이 다 들었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독자 이삭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 나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살리기위하여 하나님은 순양을 대신하여 재공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기뻐하는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불로서 저주의 불로서 십자가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내가 저주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었스비다. 예수님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에 내가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변화가됩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리를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 갑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다음에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에 가서 사탄과 시험을 하면서 사탄과 싸우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의 사건은 예수님이 구원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성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시는 것은 스스로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이끌려서 성령으로 가신 것입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과 누가복음 4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로 가시는 것은 강재성에 의하여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구원을 받아 광야로 갔습니다. 스스로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광야의 길을 가게 하였습니다.

'에크발에이'(*, '내쫓다'는 스스로 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귀신이 스스로 인간의 마음에서 나왔겠습니까? 아닙니다. 강제로 예수님이 인간의 마음에서 귀신을 내쫒은 것입니다.

 

1:13절에 사십 일을 계셔서 - 마가는 단지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 계신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나 마태는 예수님이 40일간 광야에 계시면서 금식하셨음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4:2).

왜 광야에 계셨습니까? 성령에 사로잡혀서 광야로 가시는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광야의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기 싫어합니다. 여러분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고 고난이오고 죽을 고생을 성령에 이끌려 시작된다면 좋와 하겠습니까?

사람은 성령을 받으면 시험과 어려움이 없어도 구원을 이루고 구원을 받을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성령 받으면 날마다 기적이고 날마다 기도응답이고 날마다 승리여야 하는 것을 알고 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을 받고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도 시험이 있습니다. 광야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광야는 연단의 장소입니다. 훈련의 장소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다음단계가 연단하고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가운데 연단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 광야로 이끌려 갔습니다. 광야에 도착한 이스랑레 백성은 광야의 삶을 실패하였습니다. 왜요? 얼마나 많이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연단의 장소에서 고난의 장소에서 훈련의 장소에서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오는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을 못먹는 것에 대하여 후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 광야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이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주고자하는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광야의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을까요?

마가복음 1: 13절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며 - 이말은 헬라어 '페이라조'입니다. '시험하다', '증거를 진술하다'라는 뜻은 인간을 실족케 하는 유혹(temptation) 인간을 더욱 성숙케하는 하나님의 연단(test)이라는 단어를 합쳐 놓은 단어입니다.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눈물이 없는 곳으로 슬픔이 없는 곳으로 스트레스가 없는 곳으로 고난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험악한 전투 현장으로 우리가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광야에서 입증이 됩니다. 신앙은 광야에서 입증이 됩니다. 믿음은 광야에서 입증이 됩니다. 구원 받음 믿음은 광야에서 입증이 됩니다. 성령을 받았음은 광야에서 입증이 됩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은 구원의 성격이 사탄과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왜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았을까요? 그것은 광야에서 사탄을 만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광야 가야 사탄을 만납니다. 고난가운데 사탄을 만납니다. 힘든 가운데 사탄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갔다는 것입니다.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에서 사십을 계셔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면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야게 가자마자 예수님은 사탄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두가지 시험을 받으시기 위하여 광야로 사탄을 만나러 가시는 것입니다.

광야는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땅이 황패화 되었습니다. 죄로인하여 벌을 받아 땅에 항패화 되고 황패화 되는 곳이 광야입니다.

창세기에는 어디를 봐도 광야는 없습니다. 생명의 향기가 있고 어디를 가도 인간은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땅이 황패하 됨으로 광야가 생깁니다. 인간이 살수가 없는 생명이 없는 땅이 생깁니다. 그곳은 죽음의 땅입니다. 사탄이 거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불이 없음으로 광야는 생명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사탄이 주관하는 땅입니다. 죄만있는 곳입니다. 사망이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1. 유혹의 시험입니다. 이 유혹의 시험은 예수의 메시야성을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집요한 유혹이 있는 시험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실 대제사장의 직을 감당하기 위하여 이땅에오셨습니다. 사탄은 여기에 대하여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만나면 구원자의 자격 제사장으로서 자격을 공적을 하기위한 것입니다. 2:18;4:15). 이 시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마 4:1-11;4:1-13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이 아담에게서 탈취한 이땅을 다스린 권세를 이 시험가운데 배앗기 위하여 전쟁을 하기위하여 광에서 40일을 스스로 계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령에 몰아 내시는 역사로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사탄을 만남으로 스스로 40일을 광야에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통치권을 사탄에게서 빼앗아 다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전쟁입니다.

이러한 전쟁을 선포할 때 사탄은 웃었습니다. 사서럽다 이것입니다. 아담의 후손가운데 아무리 믿음이 좋고 아무리 휼륭한 선지자라고 할지라고 다 100100패하였습니다. 어떤 유명한 광도 다 100100패하였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제사장도 다 100100패하였습니다. 아무리 유면한 선지자도 다 100100패하였습니다.

사탄은 한번도 저 본적이 없습니다. 단한번도 그의 통치권을 빼앗겨 본적이 없습니다. 그이 유혹 미혹에 다 넘어갔습니다.

경건한 사람도 믿음이 좋은 사람도 다윗도 모세도 이사야도 다 넘어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탄의 권세를 빼앗아 백성에게 주기위한 싸움입니다.

사탄은 두가지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하나는 시험입니다. 하나는 유혹입니다.

마가 복음은 시험의 내용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시험의 40일이 끝났가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시험이 광야의 시험으로 끝났다고 이야기합니다.

3가지의 시험을 다 이기고 예수님이 사탄아 떠나라고 명령을 하니 사탄이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을 들더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도 마귀가 시험을 마친후에 얼마후에 예수님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의 시험에서 한번 이금으로 시험이 끝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적으로 이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역에서 이기고 계속하여 이기고 최종적으로 십자가에서 이겨야 최종으로 사탄의 권세를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가지고 시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선악과 시험입니다.

예수님의 전투는 전쟁의 대상은 사탄입니다.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고 죄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하는 사탄이 전쟁의 대상입니다.

 

사탄에게서 승리하시고 하는 사역이 제자들을 부르는 사역입니다. 사탄을 이기기 전에는 제자드을 불러 봐야 다시 유혹하고 다시 시험하여 사탄의 수하로 만들기에 의미가 없습니다. 사탄을 이기심으로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가벼나움에 들어가서 사탄이 인간의 마음에 사로 잡고 있는 귀신을 쫓아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하나님에게 절대로 순종함으로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탄과 승리하시고 난후에 들 짐승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들 집승과 함께 하수가 없습니다. 어려분이 사자들이 우굴거리는 광야에 가서 사자와 함께 있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장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탄에게 이기심으로 들 짐승들이 예수님을 공격하지 못하고 예수님과 함께 지내게 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 이러한 것은 에덴 동산에 들 짐승들은 아담에게 복종하고 아담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이 지어준 이름이 짐승들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간의 다스림에서 벗어 났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잃은 낙원을 회복하기 위하여 왔다는 증거입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독사의 굴에 어린이들이 장난을 처도 물지 않습니다. 사자들과 함께 놀아도 물지 않습니다. 어러한 낙원입니다. 그러나 죄로 읺하여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러한 낙원이 사탄의 휘하에 들어 간것입니다.

이사야 116-8절입니다.

에덴동산을 회복하기 위하여 사탄과 결투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에게서 승리하고 난후에 예수님의 첫 번째의 설교가 무엇입니까?

때가 찹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입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전쟁이 없습니다. 전쟁을 할 수가업습니다. 그러나 셩령이 임하니 전쟁이 시작이 되고 전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위하여 성령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임합니다. 그러나므에 성령이 임한 우리를 성령은 어디로 보냅니까? 막바로 천국으로 직행을 합니까?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보냅니다. 눈물의 현장으로 성령이 우리를 보냅니다.

우리를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죄에 싸웁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붇잡고 예수님의 승리를 붇잡게 되면 사탄에서 승리하고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붇잡으면 이러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승리를 맛볼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전투하는 곳입니다.

성령이 임하여도 광야의 전쟁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실패한 그곳에서 승리하여 우리를 사탄에게서 건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하엿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눈물의 골짜기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투하지 않으면 사탄의 나라가 문어지지않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려고 우리를 광야로 보낸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순종을 체험하게 하려고 우리를 광야로 보낸 것입니다.

 

성령이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영적인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함이 없이 우리에게 평화가 없습니다.

시험받으신 장소는 첫 사람 아담이 시험받은 낙원(3)과 정반대가 되는 위

험 천만스러운 현장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

하고 반역함으로 징벌과 사망을 받았던 바로 이 광야에서 예수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승리를 거두셨다.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 모든 천사들의 주된 임무는 예수와 구원얻을 모든 자들을

섬기는데 있다(1:14). 이 천사들이 예수께 수종든 때에 관해서는 마 4:11에 나와있

는 대로 예수께서 마귀를 물리치신 후였다. 성경상에서는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구

체적으로 어떻게 수종들었는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하늘로부터 전해

진 영적 위로를 전달하고 또 40일 동안 금식하시느라고 주리신 예수께 육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일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사단의 시험을 물리쳐 이기신 그리스도께서는 유혹

의 떡(4:3) 대신에 천사가 공급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셨고 그릇된 공명심(

4:5, 6) 대신에 영광스런 영적 존재들의 보필을 받으셨으며 또 헛된 영광(4:8,9)

대신에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며 천사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게 되셨던 것이다. 그리

하여 이제부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진리를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쫓

아내시는 등 사단의 왕국을 파멸시키는 실제적인 사역을 시작할 수 있으셨다.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Test)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실족케 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 시험(Temptation)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시험을 극복하여 수치가 되지 말고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시련을 당하지만 간증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시험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랑이 될 수도 있고, 수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성도들은 시험이 자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당하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읽은 말씀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 머물게 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 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2)

당신들은,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을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 두십시오. (5)

 

당신들은,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을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겨 두십시오. (5)

 

 

 

요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

 

말씀:본문에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이 이기신 시험이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어떤 시험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적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첫째,원수 마귀는 연약한 것을 통해 시험합니다(2).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한 이후 마귀가 찾아와서 예수님이 주리신 것을 알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곳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에 약합니다. 성경의 가인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여 동생을 죽이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에 약합니다. 삼손은 이성의 언덕을 넘지 못하고 넘어져 하나님이 주신 나실인의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시험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찾아옵니다.

 

둘째,마귀는 세 가지 방법으로 시험하였습니다(39). 육적인 시험입니다(4). 마귀는 주리신 예수님께 육신을 위하여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시험하였습니다. 사람은 육의 것들을 떠나선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신적 시험입니다(6). 마귀는 예수님께 고난의 길을 가지 말고 영광을 누리라고 유혹합니다. 정신적 시험은 의식주가 해결된 후에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성공했을 때나 삶의 여유가 생겼을 때 오히려 정신적 세계가 공허해집니다. 성경의 다윗을 보더라도 어려울 때는 죄를 범하지 않았지만 왕이 된 후 죄를 짓게 됩니다.

 

영적인 시험입니다(89). 이 시험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무서운 시험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마음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으며 웃시야 왕은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리려다가 한센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월권하다가 버림받은 것입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은혜를 경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자랑하고 피묻은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끝으로 어떻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까? 성령에 이끌려야 합니다(6).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단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10).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도 시험은 찾아오지만 시험을 이김으로써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여러분 앞에 다가오는 모든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의지하면 여러분도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기도:하나님!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이 승리했던 것처럼 성령에 이끌리어 주님만 의지하고 사탄과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시험에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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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가복음 1장 강해 8 admin 2017.12.29 163
6 마가복음 1장 강해 7 admin 2017.12.29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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